'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 진출 국가를 가리기 위한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경기가 곳곳에서 치러지고 있지만 중국은 자국 축구 대표팀 경기를 중계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처참한 수준의 중국 축구를 향한 자국민들의 분노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당국의 의중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본,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인도네시아와 함께 3차 예선 C조에 편성된 중국은 지난 5일과 10일 일본, 사우디와 각각 경기를 치렀다. 결과는 처참했다. 일본에는 0-7, 사우디에는 1-2로 각각 패배했다. 일본전의 경우 '역대 최다 점수차 패배' '월드컵 예선 단일 경기 최다 실점'이라는 수치스러운 기록까지 남겼다.
이런 가운데 싱가포르 언론 연합조보는 10일(현지시간) "중국이 자국 경기를 중계하지 않고 있는 점은 흥미롭다"고 지적했다. 중국 관영 CCTV는 일본전과 사우디전 모두 중계하지 않았다. 이전 월드컵 예선에선 중국팀의 경기는 물론 다른 팀 간 경기도 생중계해 온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CCTV 측은 이번 아시아 3차 예선전을 중계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수차례의 (협상) 노력을 했지만, 여전히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제안한 중계권료가 극도로 높았다"고 밝혔다. 실제 14억 명의 시청자를 보유한 CCTV의 중계료는 다른 외국 방송사에 비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중계료 문제라기보다는 중국인들의 감정 유발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에 본사를 둔 반(反)중국 성향 매체 에포크타임스는 "중국에선 후쿠시마 오염수 사태 이후 반일 감정이 커진 데다 실업난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까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시기에 일본전 패배까지 부각하면 국가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이 매체는 분석했다.
축구를 향한 분노가 정부로 확산할 것을 우려한 중국 당국이 경기를 못 보여준 게 아니라 '안 보여줬다'는 뜻이다. 연합조보는 "중계를 하지 않은 이면에는 경제적 이유 말고도 정치적 고려도 깔려 있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자국 축구에 대한 중국인들의 감정은 패배감을 넘어 분노에 가까워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열렬한 축구 팬으로 알려진 시진핑 국가주석은 한때 '중국 축구 개혁 종합 방안'을 발표하며 대대적인 '축구굴기'를 추진했다.
하지만 최근 20여 년간 중국팀은 월드컵 본선 진출에 잇따라 실패했다. 게다가 최근엔 아시아 최약체로 평가받는 홍콩에도 패배하는 등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프로축구 경기 조작에 연루된 43명의 선수가 중국축구협회로부터 영구 제명되는 등 연일 드러나고 있는 축구계의 부패도 중국인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실제 사우디전이 열린 랴오닝성 다롄 경찰 당국은 "경기 종료 뒤 관중들이 선수단을 둘러싸는 행위 등을 엄금한다"며 관중과 선수단 간 접촉을 경계했다. 경기 결과에 화가 난 군중들이 소요를 일으킬 것을 대비한 조치로 해석됐다. 또한 일본전 대패를 두고 중국 온라인에서는 "각오는 했지만, 이런 졸전을 치를진 몰랐다" "중국 축구의 바닥은 어디냐"는 비난과 조롱이 그치지 않고 있다. 대만 중앙통신은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 '일본에 대패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CCTV에 고맙다'는 비아냥까지 쏟아지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