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의 한 작은 마을에서 살던 A(70)씨는 40년 전 결혼 준비 도중 집안의 반대로 홧김에 가출을 시도했다. 그 길로 무작정 대구로 가 홀로서기를 결심하고 식당 허드렛일과 보조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왔다.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크다는 서문시장의 한 점포에서 일할 때는 시장을 방문한 고향 마을 주민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경우도 다반사였지만, A씨는 고향과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그 인사마저 애써 외면했다. 가족과 연을 끊은 채 여생을 보냈다.
결혼하지 않아 자식도 없었고, 나이가 들어 건강도 좋지 않아 홀로 생계를 이어가기도 어려웠다. 신산한 삶에 지친 A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거와 생계 지원을 받으러 대구 중구청 민원실을 찾았다. 그런데 A씨가 기억하고 있던 주민등록번호는 전산에 등록돼 있지 않았고, 구청은 정확한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 기초수급이나 노인 급여, 의료 혜택 등 각종 지원도 언감생심이었다.
이 사연을 접수한 대구 중부경찰서 실종전담팀은 A씨를 면담한 후 가족을 찾던 중, 가족의 실종 신고 후 5년이 지나도록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 2000년 9월 사망자 처리가 된 사실을 확인했다. 24년 동안 A씨는 무적자로 살았던 것이다.
경찰은 A씨가 태어난 주소지 면사무소를 방문해 가족의 이름과 생일을 토대로 친오빠의 주소지를 알아냈지만, 아무도 살지 않았다. 다행히 이웃 주민들에게 수소문한 끝에 올케의 연락처를 확인, 지난 5일 A씨는 오빠와 40년 만에 상봉했다.
암 투병 중인 A씨의 오빠는 "부모님도 다 돌아가시고 죽은 줄 알았던 동생이 다시 돌아와 무척 기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도 역시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도와준 경찰에게 연신 감사의 뜻을 보냈다.
권병수 중부서 형사과장은 "실종선고 후 24년 동안 사망자로 간주돼 의료 및 복지혜택도 받지 못하고 사각지대에 놓여 살아온 A씨의 사연이 매우 안타까웠다"며 "가족 상봉에 그치지 않고, 실종선고 취소 청구 및 가족관계등록부 회복 절차를 비롯해 각종 생계비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중구청 역시 A씨가 신원을 회복하는 대로 긴급지원 등을 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