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미국 대선 레이스가 다시 백중세로 돌아갔다. 민주당 새 대선 후보로 등판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기세에 눌렸던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반등 조짐을 보이며 초접전 구도로 회귀한 것이다. 10일(현지시간) TV 토론에서 ‘모멘텀’(상승 동력)을 찾지 못할 경우 해리스 부통령은 남은 두 달간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미 시에나대와 함께 투표 의향이 있는 전국 유권자 1,695명을 대상으로 지난 3~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늘이 대선일이라면 누구에게 투표하겠느냐’고 물었더니 응답자의 47%가 해리스 부통령을, 48%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각각 선택했다고 8일 보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도전 포기 선언 직후인 7월 22~24일 조사 때 결과와 별 차이가 없는 수치다. 당시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각각 46%, 48%였다.
그러나 한 달여간 판세가 요동쳤다. 바이든 대통령이 치명적 고령 약점을 노출한 6월 27일 TV 토론 뒤 지지율 격차를 벌린 트럼프 전 대통령을 한때 크게 따돌렸을 정도로 해리스 부통령 기세가 좋았다. 허니문 효과(기대감에 따른 지지율 상승)였다. NYT는 “트럼프 지지율이 놀라운 회복력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NYT 여론조사 전문기자 네이트 콘은 “트럼프 우세 국면 복귀가 한 달 만에 처음 포착됐다”고 설명했다.
대선 결과를 좌우하는 7개 경합주(州)도 팽팽하다. 네바다,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애리조나 등 ‘선벨트’(일조량이 많은 남부) 4개 주는 전부 48% 동률이었다.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벨트’(쇠락한 중서부 공업지대) 3개 주에선 해리스 부통령이 앞서기는 했어도 차이가 1~3%포인트로 근소했다. 지난달 4%포인트까지 벌어졌던 러스트벨트 격차가 줄며 격전지 전체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졌다. 같은 날 공개된 미국 CBS방송과 여론조사업체 유고브의 러스트벨트 유권자 대상 조사에서도 3개 주 모두 해리스 부통령이 우위였지만, 차이는 커 봐야 2%포인트였다.
해리스 부통령이 누릴 허니문은 노동절(9월 첫 주 월요일, 올해는 2일) 무렵 끝날 것이라는 게 당초 전망이긴 했다. 그런데 악재도 포개졌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을 막은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끌려갔던 인질 6명이 시신으로 발견되고 여기에 미국인 한 명도 포함되자 바이든 행정부 책임론이 제기됐다. 지난달 불거진 트럼프 전 대통령의 국립묘지 참배 홍보 논란은 3년 전 아프가니스탄 철군 당시 테러로 미군 13명이 희생됐던 ‘아픈 기억’을 소환했다.
10일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리는 ABC방송 주관 대선 TV 토론이 해리스 부통령에게 ‘기회’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NYT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의 상승세를 멈춰 세운 것은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다. ‘트럼프에 대해 더 알아야 한다’는 응답 비율이 고작 9%인 반면, ‘해리스에 대해 더 알아야 한다’는 답변은 28%나 됐다. 특히 알고 싶은 것은 그의 정책이다.
만만한 상황은 아니다. 해리스 부통령이 접전을 이기려면 자신을 충분히 알려 민주당 지지층을 최대한 투표소로 끌어내거나 진보색을 희석해 중도 부동층을 가급적 많이 끌어와야 한다. 하지만 현재 중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 차지다. NYT 조사에서 ‘트럼프가 오른쪽으로 너무 멀리 갔다’고 여기는 사람(32%)보다 ‘해리스가 너무 왼쪽으로 갔다’고 믿는 사람(47%)이 더 많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해리스 부통령에게 현 정부 실정에 책임이 있는 ‘바이든 2인자’와 ‘급진 좌파’ 딱지를 붙이려 애쓰리라는 게 전문가들 예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