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나노, 페어링 분리 시험하겠습니다. 셋, 둘, 하나!"
카운트다운이 끝나자마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범고래처럼 생긴 로켓 머리가 절개선을 따라 두 쪽으로 갈라졌다. 로켓에서 위성을 품고 있는 페이로드 페어링(첨두부)이 분리되는 소리였다. 화약류를 사용하지 않고 압력으로만 분리하는 기술을 도입해 연기 없이 소리만 났다. 실제 우주에선 이렇게 페어링이 분리되고 나면 그 안에 실린 위성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실상 발사체 개발의 가장 마지막 단계라는 페어링 분리 기술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이노스페이스는 내년 3월 브라질에서 국내 기업 최초로 민간 상업발사에 도전한다.
이노스페이스는 9일 충북 청주시 사업장에서 취재진에 페이로드 페어링 분리 시험을 처음 공개했다. 페이로드는 발사체에 실리는 탑재물을, 페어링은 페이로드를 감싸는 원뿔 모양의 껍데기를 뜻한다. 이 껍데기는 우주로 발사되는 동안 발사체에 가해지는 압력과 열로부터 페이로드를 보호하는데, 공기가 없는 우주 공간으로 올라간 뒤에는 떨어져 나가줘야 탑재물이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그래서 페어링 분리 시험은 발사체가 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키기 위한 최종 관문으로 여겨진다.
페어링 분리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양쪽이 동시에 갈라져 근거리에 떨어지는 것이다. 김수종 이노스페이스 대표는 "분리 이후 발사체는 계속 진행 방향으로 비행하는데, 양쪽이 불균형하게 분리되면 (떨어져 나간) 페어링이 비행체를 때릴 위험이 있다. 또 구조적 강성을 유지하면서 가볍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노스페이스는 페어링이 갈라지면서 위성에 주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화약을 쓰지 않았고, 무게를 줄이기 위해 탄소복합소재를 사용했다.
이노스페이스는 2단 로켓 '한빛-나노'를 내년 3월 브라질에서 우주로 띄워 보낸다는 계획이다. 앞서 이노스페이스는 지난해 3월 브라질에서 지구 궤도 중 가장 낮은 저궤도보다 낮은 준궤도급(100㎞ 상공)으로 '한빛-TLV'를 시험발사하는 데 성공했지만, 한빛-나노 발사는 훨씬 진전된 기술이다. 궤도가 우주궤도급(500km)으로 올라가고, 엔진도 1단에서 2단으로 바뀐다. 단순히 한 단을 추가하는 게 아니라, 엔진도 연료에 따라 두 종류(1단 하이브리드, 2단 메탄)로 배치한다. 특히 하이브리드 엔진 발사체로 상업 발사에 나서는 건 세계 첫 시도다. 한빛-나노의 하이브리드 엔진은 파라핀 기반의 고체연료와 액체 산화제를 추진제로 사용한다.
김 대표는 "페어링 분리 시험을 포함해 현재까지 확보된 기술력은 90% 정도로, 오는 10월 조립에 나서면 연말에 롤아웃(발사체를 조립동에서 내보내는 것)까지 가능할 것"이라며 "하이브리드 로켓 엔진을 이용해 비행 시험과 궤도 발사까지 해내는 첫 한국 기업이 되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첫 상업 발사지만 한빛-나노에 태울 '손님'들도 유치했다. 김 대표는 "보통은 발사 9개월 전까지 예약을 받는데, 첫 발사 자리를 최대한 많이 채우려고 아직 (예약을) 열어뒀다"면서 "발사 가격을 할인해 주면서도 수익을 낼 수 있도록 계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빛-나노의 1㎏당 발사 단가는 3만3,000달러(약 4,400만 원)이며, 최대 90㎏을 실을 수 있다. 1㎏당 수송 비용이 2,000~3,000달러(270만~400만 원) 수준인 미국 기업 스페이스X보다 10배 이상 비싸지만, 소형 발사체 시장에서는 경쟁력이 있다고 이노스페이스는 판단한다. 김 대표는 "소형 발사체는 원할 때 발사하는 게 중요한데, 미국에서도 로켓랩 등 발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워낙 적어 대기가 긴 편이라 신규 사업자가 나오면 고객 유치가 가능할 것"이라며 "로켓랩과는 (우리 가격이) 큰 차이가 없고, 시장에서도 가격이 오르는 추세"라고 말했다.
한빛-나노에 태울 위성 중 아직 국산은 없다. 국내 기업은 대부분 설립 초창기라 발사 성공 여부가 회사 존망과 직결되다 보니, 한빛-나노의 내년 발사 성공 여부를 우선 지켜보는 것 아니겠냐고 김 대표는 추측했다. 3월 발사에 성공하면 내년 한 해 동안 한빛-나노는 추가로 3번 더 쏘고, 이보다 육중한 '한빛-마이크로'도 3회 발사에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