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과 공장 등을 전전하며 생계를 잇던 이영철(가명·66)씨는 15세이던 1973년, 대구시립희망원에 강제 수용됐다. 창이 없는 시멘트 바닥에서 30여 명과 생활하며, 가혹행위를 말 그대로 '밥 먹듯' 당했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5개 시설을 옮겨 다니며 입소와 퇴소를 반복하기도 했다. 그가 시설을 벗어나게 된 건 1998년. 23년 만이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6일 제86차 위원회에서 '서울시립갱생원 등 성인 부랑인 수용시설 인권침해 사건' 수용자 13명에 대해 진실규명을 결정했다고 9일 밝혔다.
조사 결과 서울시립갱생원, 대구시립희망원, 충남 천성원(대전 성지원, 연기군 양지원), 경기 성혜원 4개소에서 수용자 폭행, 노역 강제 동원, 원산폭격(뒷짐 진 채 머리를 바닥에 대는 가혹행위) 등 중대한 인권침해가 빈번하게 벌어졌다. 피해자는 서울시립갱생원 1,900여 명 등 수천 명으로 확인됐다.
이들 4개소는 부산 형제복지원과 동일한 정책인 내무부훈령 제410호 등에 의해 운영됐다. 앞서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뒤 35년 만인 2022년 8월, 형제복지원 사건에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진 데 이어 37년 만에 성인 부랑인 수용시설의 인권침해 실상이 최초로 종합 규명됐다. 진실화해위는 내무부훈령을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의 신체적 자유를 형사 사법 절차 없이 침해하는, 위헌·위법한 규정으로 판단했다.
진실화해위 조사를 통해 수용자를 전국 각지의 시설로 전원시켜 장기 수용시키는 이른바 '회전문 입소' 실태도 최초로 드러났다. 수용자 연고지를 고려한다는 명목이었으나, 실제 연고지는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 △타 시설 노동력 동원 △규칙 위반자 처벌 △타 시설 인원 충원을 위한 돌려막기 목적이었다.
시설 사망자의 시체를 해부 실습용으로 수백 구가량 넘긴 정황도 포착됐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 한 의과대학에 들어온 시체의 70% 이상은 충남 천성원 산하 대전 성지원에서 교부됐는데, 연고자 인계 등 절차는 전무했다. 이 밖에도 임신 상태로 입소한 여성의 친권 포기를 강요하며 아이를 홀트아동복지회 등 입양 알선기관으로 보내고, 자의적으로 정신질환 판단을 내려 수용자를 격리 수용하기도 했다.
서울시립갱생원 등 일부 시설은 명칭과 법인 등을 바꿔가며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1980년대와 같은 인권침해 양상이 계속된다고 단언하긴 어렵다"면서도 "심각한 인권침해가 국가, 사회적으로 성찰되지 않은 채 시설이 유지돼 왔기 때문에 폐단과 문제점이 여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진실화해위는 국가에 △피해자에 대한 공식 사과와 실질적 피해 회복 조치 △재발방지책 마련 △지속적 피해자 지원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또 △형제복지원 등 다른 집단 수용시설 피해까지 아우르는 특별법 제정 △피해자들의 개별 구제신청 없이도 적절한 보상 및 재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