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인류의 지적 문화유산이자 철학적 사유의 결정체로 전해 내려왔다. 특히 한·중·일 3개국에선 단순한 놀이를 넘어 동아시아 문화의 정체성을 향유하는 종목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바둑 산업을 활성화하거나 국제적으로 문화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선 늦출 이유가 없는 과제다. 삼국 간의 협력에도 긍정적인 시그널이 존재한다. 중국은 작년 7월 ‘이창호 9단의 라이벌’ 창하오 9단이 중국 바둑협회 주석에 오른 이후, 바둑 산업 발전을 위한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기원 역시 그동안 폐쇄적이었던 것과 달리, 올해 자국 여자 바둑리그를 만들며 스포츠화를 위한 본격적인 걸음을 내디뎠다. 바둑 문화의 깊이와 가치는 어느 문화유산에도 뒤지지 않을 것이기에, 삼국의 협력만이 유일한 과제일 것이다.
흑1은 하변 백의 연결을 차단하는 급소. 이때 내부에서 삶의 공간을 확보한 백2, 4의 선택이 좋지 못했다. 7도 백1, 3으로 하변을 버린 후 백5, 7로 상변을 먼저 압박해야 했던 장면. 흑이 흑8로 버티면 백9, 11로 패를 결행할 때 하변 팻감이 요긴하다. 실전 흑13까지 일단락이 된 이후엔 다시 미세한 형세. 변상일 9단은 뒤늦게나마 백14, 16으로 상변을 압박한다. 이때 박영훈 9단이 선택한 흑17이 나약한 실수. 8도 흑1에 뻗어 버텨야 할 장면이었다. 흑9로 패를 굴복하더라도 흑11, 13으로 재차 넘어가면 충분했던 자리였다. 실전 백22로 상변이 깨지자 형세가 다시 백에게 쏠렸다. 흑35 역시 악수. 백38 자리를 역으로 밀어갈 타이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