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고생해 40마리에서 500마리까지 불린 가축이 10여 년 전 조드(dzud·기상이변) 한 번에 모조리 죽었어요. 소 10마리 빼고요. 여섯 아이 혼자 키우느라 위험해도 쓰레기장 생활밖에 답이 없었죠."
서른 해 가까이 드넓고 푸른 몽골 초원을 누비면서 가축을 키웠던 베 솝드(40)는 2010년대 초 닥친 이상기후로 생계를 잃고, 수도 울란바토르로 내쫓기다시피 이주했다. 평생 유목민 생활을 한 그에게 도시는 냉혹했고, 이혼까지 하자 결국 '쓰레기장 빈민' 신세가 됐다.
지난달 30일 수도 인근 울란촐로트 쓰레기 매립지 마을에서 그를 만났다. 솝드도 불과 4년 전에는 집 근처 매립지에서 새벽 5, 6시부터 저녁까지 고철과 플라스틱을 주워 먹고살았다. 온종일 주워 큰 포대자루 대여섯 개를 채우면 5만 투그릭(약 2만 원)을 벌었다. 이날 한국일보가 찾은 매립장에서는 최소 수십 명이 쓰레기차가 오갈 때마다 몰려들어 직접 쓰거나 팔 수 있는 물건을 찾고 있었다.
엄청난 양의 쓰레기 더미, 무섭게 달라붙는 파리 떼와 먹을 것을 찾아 맴도는 새 떼 사이로 몇몇은 폐가구를 모아 임시 거처를 마련한 모습이었다. 그나마 3년 전 NGO 도움으로 대안학교 경비원 일자리를 구해, 학교 내 작은 단칸방에서 여섯 아이와 사는 솝드는 운이 좋은 경우다.
조드는 몽골어로 가축 집단 폐사를 유발하는 가뭄·폭설·한파 등 기상이변을 뜻한다. 헨티 아이막(道) 자르갈트항 솜(郡)에서 살았던 솝드는 극한 폭설이 내린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골반 높이까지 눈이 내려서 두 달 내내 가족 말고 다른 사람은 보지도 못했어요. 차 대신 타고 다니던 말이 있었는데 얼어 죽고, 겨울을 나려고 준비했던 건초나 사료도 다 동이 나서 염소랑 양이 전부 죽었죠. 아이들 대학 보내려 등록금도 모으고 있었는데..." 올겨울에도 극한 한파가 닥쳐 몽골 전역에서 500만 마리가 넘는 가축이 떼죽음을 당했다.
문제는 기후변화 여파로 10년 주기로 닥치던 재앙이 갈수록 빈번해질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는 점이다. 몽골 기상수문환경연구소 등 연구진 분석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1980·90년대보다 극한 한파가 잦아졌고, 또 다른 연구는 '온실가스 저감정책이 상당히 실현되는 상황(RCP4.5)'을 가정해도 향후 급격한 건조화와 더 잦은 가뭄을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후 탓에 고향을 떠나 수도로 이주한 실향민은 솝드만이 아니다. 가축을 키우기 힘들 정도로 척박해진 땅, 이상기후와 도농격차까지 겹치며 2000년대 들어 몽골에서는 '대이주'가 벌어졌다. 1989년에는 몽골 인구 4분의 1이 수도에 살았지만 이제 절반(2022년·160만 명)이 산다. 모든 이에게 일자리와 주거가 허락되지 않으니, 상당수는 게르촌에서 도시 빈민으로 살아야 한다. 당초 도시 계획(50만 명)보다 3배가 몰려든 현 상황은 교통체증, 폐기물 문제, 대기오염 등 다른 사회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기후변화로 생계와 터전을 잃는 '기후 난민'이라고 하면, 해수면 상승으로 물에 잠길 어느 섬나라 상황처럼 먼 얘기 같지만 한국 관광객이 자주 찾는 주변국에서도 당장 벌어지는 문제인 것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50년까지 기후변화 여파로 전 세계 2억여 명이 국내 강제 이주를 겪을 것으로 전망되며, 호주 민간 싱크탱크 경제평화연구소(IEP)는 그 수가 무려 12억 명이 될 수 있다는 암울한 경고도 내놓은 바 있다.
탄소배출 감축 노력이 없다면 한국도 안전지대일 수 없다. 지난해 3월 국립해양조사원이 발표한 해수면 상승 전망치를 보면, 지금처럼 화석연료 사용이 많은 '고탄소 상황'이 지속될 경우 2100년까지 최대 82㎝ 해수면 상승이 예상되며 전국 연안 곳곳이 침수 지대가 될 전망이다. 점점 잦아지는 여름철 극한호우도 대규모 이재민을 발생시키는 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