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신분데 위고비만 기다려요"... 출시도 안 된 비만약, 벌써부터 대란

입력
2024.09.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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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의 약' 위고비 열풍의 명암]
감량효과 탁월... 심혈관질환, 지방간 효과
벌써부터 문의 쇄도·유사 성분약 품귀까지
의료계 "약물 남용·높은 의존도 경계해야"


"아직 나오지도 않은 약을 그렇게들 찾네요."

서울의 한 비만클리닉에는, 요즘 비만치료제 위고비(Wegovy) 소식을 묻는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 클리닉 원장은 "이미 비만 치료를 받는 사람들도 먼저 위고비 얘기를 꺼낸다"며 "미국에서 가격이 높은데도 품귀 현상이 있다고 하는데, 국내에서 출시돼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고 말했다.

덴마크 기업 노보 노디스크가 만든 위고비는 식욕 억제 효과로 체중 감량을 돕는다. 1주에 한 번 복부에 투여하고, 평균적으로 체중의 15%를 감량할 수 있다고 한다. 3년 전 미 식품의약국(FDA)에서 비만치료제로 승인받은 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와 모델 킴 카다시안 등이 이 약으로 감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약 덕분에 노보 노디스크는 시가총액 기준으로 유럽에서 가장 큰 회사로 등극했다.

21세기 무안단물?

전 세계 다이어터(체중 감량 중인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든 그 약이 올해 4분기 또는 내년 상반기 국내에 출시된다는 얘기가 돌자, 벌써 '위고비 대란' 조짐이 보이고 있다. 전국의 비만클리닉이 위고비 때문에 들썩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정보 교류가 한창이다. 전문가들은 '기적의 약'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부작용이 간과되어 있어, 이 약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올해 4월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위고비 허가를 내준 이후 다이어트 중인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위고비에 쏠려 있다. 서울의 다른 비만클리닉에도 '위고비 언제 처방받을 수 있느냐'거나 '출시 일자라도 알려달라'는 문의전화가 쇄도한다고 한다. 문의가 많다보니 일부 클리닉은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통해 위고비 사용법이나 국내 출시 내용을 담은 글을 게재해 사람들의 관심을 잡아둔다. 다이어트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사이트나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 커뮤니티에도 이 약 관련 정보가 넘쳐난다.

위고비 열풍은 다른 비만치료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체중 관리를 위해 다이어트약을 종종 복용한다는 김모(30)씨는 "해외 직접구매를 통해 위고비와 성분이 동일하다고 알려진 알약들을 사들이고 있다"며 "위고비는 현지에서도 인기가 높아 직구가 어려운데 (국내로 들어와) 유명해지면 유사 약품마저 구하기 어려워질 듯해 공동 구매를 계획 중"이라고 했다.

'기적의 약'도 부작용 있다

위고비는 비만 외에 다른 질환을 치료하는 효과도 있다. FDA는 올해 3월 이 약을 심장질환, 뇌졸중 위험을 줄이는 데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지방간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까지 있다. 효능만 보면 각종 대사질환에 널리 쓰일 수 있는 만병통치약에 가까운 셈이다.

그러나 의료계에선 이런 위고비 역시 부작용이 적지 않아 남용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임수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위고비는 3~6개월에 걸쳐 투약 용량을 천천히 올려야 되는데, 임의로 높은 용량을 투여하면 구토·설사 등 위장계열 부작용이 필연적으로 따라와 세심한 복약 지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경원 이대목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중독성은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호르몬제라 투약을 멈추면 약물 의존도를 높일 수 있다"며 "바른 생활습관을 갖추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처방이 필요한 약을 해외 직구로 구해 복용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지난달 20일 국제 학술지 미국의사협회지(JAMA)에는 위고비의 주요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가 항우울제 복용자에게 자살 충동 부작용을 다른 비만치료제보다 4배 이상 촉발한다는 내용의 연구가 실려 논란이 됐다. 식약처 관계자는 "임상 실험에서 관찰된 부작용은 발생 빈도와 함께 전부 명시해뒀다"며 "추가로 확인되는 (자살 충동 등) 부작용이 있다면 바로 반영해 안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