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권을 넘기고 일본 기업의 투자를 받아 부활하려던 미국 대표 철강 기업 US스틸이 자국 대선판에서 날아온 유탄을 맞을 위기다. US스틸 본사가 있는 펜실베이니아주(州)에서 하필 대선 최대 혈전이 벌어지며 생긴 일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불허한다는 방침을 공식 발표하려 준비 중이라고 정부 소식통 말을 인용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명분은 국가 안보 우려다. 현재 해당 거래는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심의 대상이다. CFIUS는 외국인의 기업 인수합병 등 대미 투자가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해 걱정된다고 판단하면 대통령에게 거래 불허를 권고할 수 있다.
아직 확정된 상황은 아니다.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심의가 완료되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US스틸도 CFIUS로부터 결과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도만으로도 파장이 크다. 이날 US스틸 주가는 17.5% 폭락했다.
미국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와 존 피어폰트 모건의 철강회사가 1901년 합병해 탄생한 US스틸은 미국 제조업의 상징 같은 기업이었다. 하지만 일본, 유럽, 한국에 이어 중국에도 밀리면서 적자에 시달리다 매각에 나섰고 세계 4위 철강사 일본제철이 지난해 12월 149억 달러(약 19조4,000억 원)에 인수를 결정했다.
매각 불허는 여러모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동아시아 역내 중국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이를 견제할 목적으로 미국이 일본과의 관계를 강화하려 애쓰는 시점에 양국의 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데이비드 버릿 US스틸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공개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를 통해 매각이 불발될 경우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마지막 남은 몬밸리 제철소를 폐쇄하고 본사도 피츠버그 밖으로 이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일자리 수천 개가 날아갈 수 있다는 경고라고 전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바이든 대통령이 매각 불허를 밀어붙이려는 것은 11월 대선을 앞두고 승패를 가를 핵심 격전지인 펜실베이니아주의 노동자 ‘표심’을 고려한 결과 아니겠냐는 게 미국 언론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특히 피츠버그가 있는 펜실베이니아주 서부는 가장 중요한 미국 산업 중심지 중 하나로, ‘블루칼라’ 노동자가 주요 유권자 집단이다. 보호무역 냄새를 풍기는 메시지가 잘 통한다.
펜실베이니아는 민주·공화 양당 모두 사활을 건 승부처다. 선거인단이 7개 경합주 중 가장 많은 19명이다. 광고 분석 업체인 애드임팩트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의 민주당 대선 후보직 사퇴 이튿날인 7월 22일부터 8월 말까지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둘 다 펜실베이니아주 광고에 압도적으로 큰돈을 투입했다. 경합주 전체 대비 비율이 해리스 측은 32%(4,220만 달러·약 564억 원), 트럼프 측은 28%(4,350만 달러·약 581억 원)에 달했다.
지지율 경쟁도 초박빙이다. 미국 CNN방송이 이날 소개한 SSRS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펜실베이니아주의 경우 47% 동률이었다.
투표 개시가 상대적으로 빠른 주이기도 하다. 16일부터 우편 및 현장 사전 투표가 진행된다. 마침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10일 첫 TV 토론을 갖는 곳 역시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다.
노동절인 지난 2일 피츠버그 유세 때 US스틸의 소유·경영권이 미국에 남아야 한다며 바이든 대통령의 매각 반대 승계 입장을 분명히 한 해리스 부통령은 5일 피츠버그로 돌아가 토론 날인 10일 직전까지 아예 계속 머문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일찌감치 집권 즉시 US스틸 거래를 차단할 것이라고 공언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