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이면서도 필리핀 국적으로 신분을 속여 ‘중국 간첩’ 혐의를 받았던 필리핀 전직 시장이 인도네시아에서 체포됐다. 필리핀 내에서 그의 송환이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인도네시아 정부가 ‘범죄자 맞교환’ 카드를 꺼내 든 탓에 필리핀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5일 필리핀 마닐라타임스 등에 따르면 헤서스 크리스핀 레물라 필리핀 법무장관은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체포된 앨리스 궈(35) 전 필리핀 밤반시(市) 시장과 필리핀에 구금 중인 호주인 마약상 그레고르 요한 하스(46) 간 맞교환 제안이 있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하스는 인도네시아 수사 당국의 추적을 받아 온 인물이다. 레물라 장관은 해당 제안을 인도네시아 정부가 했다며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사이에는 이 문제와 관련해 해결할 사안이 있어 (맞교환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매우 복잡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몇 시간 후 필리핀 법무부는 “정부 차원의 공식 (교환) 요청은 아직 없었다”며 사실상 장관 발언을 정정했다. 그러나 이후 인도네시아 경찰청 고위 관계자와 주필리핀 인도네시아 대사관 관계자가 현지 언론에 “필리핀 정부는 하스를 인도하는 데 협조하길 바란다”고 밝히면서 양국 간 협상은 기정사실로 여겨지고 있다.
궈 전 시장은 필리핀에서 ‘범죄 소굴’로 악명 높은 중국계 온라인 도박장과 유착해 불법 입국 알선, 보이스피싱, 사기 등 범죄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다. 범죄 활동 수익금 1억 페소(약 23억8,000만 원) 이상의 돈을 세탁한 혐의도 포함됐다.
게다가 실제로는 중국인이면서도 필리핀인 명의를 도용, 신분 세탁을 거친 뒤 중국 간첩으로 활동했다는 의혹마저 제기됐다. 필리핀 상원이 궈 전 시장에게 청문회 출석을 요구했지만, 여러 차례 불응하자 당국은 체포영장을 발부하며 신병 확보에 나섰다. 다만 그는 이미 해외로 출국한 상태였다.
지난달 18일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거쳐 인도네시아로 도피한 궈 전 시장은 전날 자카르타에서 검거됐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까지 나서 궈 전 시장의 빠른 송환을 촉구하는 등 필리핀 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던 차에 인도네시아 측이 ‘범죄인 맞교환’ 카드를 꺼내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상대는 멕시코 최대 마약 조직 ‘시날로아 카르텔’의 핵심 조직원으로 알려진 호주인 하스다. 지난해 12월 5㎏ 이상의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을 인도네시아로 밀수하려다 적발돼 현지 사법 당국의 용의선상에 올랐다. 이후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적색 수배 대상이 됐고, 올해 5월 필리핀 세부에서 체포됐다. 현재 필리핀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필리핀 정부가 인도네시아의 제안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마약 범죄가 엄격하게 처벌된다. 마약 유통의 경우 총살형까지 처해진다. 외국인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필리핀은 2006년 사형 제도를 폐지해 범죄자 맞교환이 쉽지 않다. 하스가 필리핀에서 인도네시아로 인도되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는 부분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필리핀 인콰이어러는 “사형 제도가 없는 곳에서 사형이 선고되는 국가로 사람을 인도해야 하는 점이 레물라 법무장관이 말한 ‘복잡한 문제’일 수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