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1대 국회 폐원 직전 더불어민주당이 제안한 모수개혁안을 거부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구조개혁을 병행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지만 막상 정부가 4일 내놓은 '연금개혁 추진계획'은 구조개혁안이 빈약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야당 제안을 내친 명분과는 달리 향후 연금개혁 논의도 구조개혁이 아닌 모수개혁으로 흐를 가능성이 커졌다.
5일 연금 전문가 등에 따르면 연금제도의 급여액이나 보험료율 등 핵심 숫자 조정이 모수개혁이라면 구조개혁은 전체 설계도를 바꾸는 것이다. 국민연금 등 4대 공적연금은 물론 공적부조인 기초연금까지 각각의 구조개혁을 할 수 있고,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포함한 다층적 노후 소득 보장 체계 전체를 아우르는 큰 틀의 구조개혁도 가능하다.
전날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연금개혁안 중에서는 인구구조 변화나 경제 여건 등과 연동해 연금액을 조절하는 '자동조정장치' 정도가 국민연금 구조개혁안으로 꼽힌다. 세계 최초로 추진하는 연령대별 보험료율 인상 속도 차등화는 한시적 조치인 데다 보험료율 인상과 연계돼 모수개혁을 위한 방안에 가깝다.
자동조정장치도 장기적 과제로 제안한 터라 아직은 '검토'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가 제시한 시나리오상 가장 빠른 도입 시기가 2036년이라 현실적인 구조개혁안과는 거리가 멀고, 시민사회단체와 야권이 '연금삭감장치'라고 반발해 현재로서는 국회 문턱을 넘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재정 안정을 강조하는 전문가들의 모임인 연금연구회도 "소득대체율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고 소비자물가상승률에 따른 인상분을 가감하는 방식이라면 국민연금 구조개혁안이라 하기는 어렵다"고 정부의 자동조정장치 구상을 평가절하했다.
기금이 고갈됐거나 고갈이 임박해 개혁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과 연계한 구조개혁은 개혁안에 언급도 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의 '2024∼2028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세 공적연금에 대한 정부의 의무지출은 올해 약 34조 원에서 2028년 42조 원으로 불어난다.
기초연금은 예정된 40만 원 인상 시기를 명확히 했을 뿐 수급 범위는 소득 하위 70%를 유지하기로 해 구조개혁과 거리가 멀다. 퇴직연금은 도입 의무화 추진, 개인연금은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 확대 정도를 나열한 정도다. 복지부 관계자는 "기초연금, 퇴직·개인연금까지 다층적 연금 틀 속에서 어떻게 노후 소득을 보장할지 계산해 개혁안을 만들었다"고 했다. 전체적으로 구조개혁적 접근이라는 설명이지만,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22년 기준 퇴직연금 수급률은 0.2%라 노후 소득 역할을 못하고, 정부 개혁안의 퇴직·개인연금 내용도 새로운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결과적으로 국회 논의가 모수개혁, 특히 소득대체율과 세대별 차등화 등에 집중될 것으로 전망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새로운 구조개혁안을 꺼내기는 어려울 듯하고 정부 개혁안을 중심으로 이견이 큰 모수개혁안들이 쟁점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