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요자, 누가 판단해주나"... 혼란 더 커진 대출 시장

입력
2024.09.05 15:00
"실수요자 피해 없게 하라"는 이복현 지시
은행들 "실수요와 투기수요 구분 어려워"
당국의 가이드라인만 기다리는 상황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실수요자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며 대출 규제를 시행한 은행들에 "기계적이고 일률적인 대책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하자 은행권이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 실수요인지 투기적 수요인지 구분하는 것이 칼로 무 자르듯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5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 원장은 10일 은행장들과 만나 실수요자를 보호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은행연합회 역시 이에 발맞춰 은행들의 대출 규제안을 정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금융당국도 협의체에 참여할 예정이다.

현재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특히 이 원장의 '실수요자 피해 최소화' 발언이 나오자 1주택자에 대한 대출 규제를 이미 시행한 우리은행, 삼성생명 등은 정책을 원복해야 하는지 고심하고 있다. 이 원장은 전날 "1주택자들도 자녀가 지방에 대학교를 다녀야 해 전셋집을 구하는 등 실질적으로 생활에 필요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며 "투기 목적이 아닌 경우도 있을 텐데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문제는 실수요에 대한 기준이 명확지 않다는 데 있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해당 은행들도 1주택자까지만 실수요자로 판단하고 정책을 만들었을 것"이라며 "고객들은 각자 상황에 따라 실수요라고 주장할 텐데 앞으로 어떻게 대출 정책을 짜야 하는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이 원장이 은행장들과 만나 얼마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당국의 가이드라인이 나온다면 은행별로 대출 조건이나 한도가 달라 혼란이 생기는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그만큼 당국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향후 당국이 실수요자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가계 대출이 다시 급증할 수도 있고, 반대로 너무 깐깐하게 기준을 정해 실수요자가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골에 물려받은 집이 있는 경우, 직장 때문에 단기간 타지역에 머물러야 하는 사례, 자녀의 학업 때문에 2주택을 유지해야 하는 등 1주택자마다 사정이 천차만별이라 실수요자라는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부동산 시장 상황을 잘 모르는 금융관료가 시장에 더 큰 혼란을 야기할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