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의 가치창출은 축적된 기술에서 나온다. 바둑 역사를 살펴봐도 명국의 묘수나 혁신적인 포석은 진공에서 탄생하지 않았다. 앞서 거쳐 갔던 수많은 기사의 경험과 연구의 결실에 가깝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바둑은 또 다른 변화를 맞았다. AI는 축적된 데이터로 새 전략을 제시하고, 프로기사는 이를 학습하고 재해석해 대국에 임한다. AI 시대에도 진정한 혁신이 과거와의 단절이 아닌,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창조적 재해석임을 보여준다. 다만 바뀐 점은 해석의 주체가 AI가 됐다는 점이다. 과연 사람들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혹은 받아들일 수 있을지가 기술 발전과 별개로 커다란 쟁점이 될 것이다. AI는 추앙받는 신이 될지, 부려 먹는 노예가 될지, 혹은 발전된 기술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 것일지. 시간이 흘러야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변상일 9단의 우변 약점 공략에 박영훈 9단은 고심에 빠진다. 결국 흑3의 연결을 선택. 그러나 다소 아쉬운 판단이었다. 5도 흑1로 틀어막았어야 할 장면. 흑5, 7을 선수한 뒤 흑9로 상변을 크게 짓는 편이 나았다. 실전 백6의 젖힘이 성립해 백8에 흑9로 후퇴할 수밖에 없자 상변 흑 집의 폭이 크게 줄어들었다. 백10은 마지막 남은 큰 자리. 다만 흑11이 놓였을 때 무심코 결행한 백12, 14가 커다란 악수. 6도 백1, 3으로 중앙을 돌파한다고 봤을 때 해둘 필요가 없는 교환이었다. 흑4, 6으로 하변을 차지하는 동안 백13에 두텁게 눌러놓으면 백이 충분한 형세. 실전 백18이 놓였을 땐 이미 중앙 가치가 크게 작아진 이후였다. 박영훈 9단이 흑23, 25로 하변을 두어가자 형세는 다시 미궁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