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생 수준의 우리 편 가르기

입력
2024.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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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 다니는 정도의 아이들과 함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가끔 "지금 나오는 저 사람은 우리 편이에요? 나쁜 편이에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아마도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이나 의미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표현은 자신이 현재 속해 있는 집단은 옳고 선하며, 그 외의 다른 집단들은 나쁘고 선하지 않다는 배타적 의미를 은연중에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미국의 미디어 학자 호프너와 캔터는 어린이들이 미디어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재미있는 실험을 하였다. 대중 매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외모와 행위와의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매력적인 캐릭터와 매력적이지 않은 캐릭터를 설정하고 각각 긍정적인 행위를 하는 경우와 부정적인 행위를 하는 경우에 아이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았다.

먼저 유치원생은 행위에 관계없이 외모가 매력적인 캐릭터를 무조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외모가 매력적인 캐릭터는 부정적 행동을 하는 경우에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반면 초등학생 이상 아동들은 비록 외모가 매력적인 캐릭터라도 나쁜 행동을 하는 경우에는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외모가 덜 매력적이더라도 긍정적인 행동을 보일 경우에도 그를 긍정적이고 매력적으로 인식했다. 실험 결과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대체로 아동들이 성숙해 가면서 사람들의 외모나 외적인 면보다는 행동이나 내적인 면을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위 막장 드라마의 재미 요소를 이야기할 때에도, 캐릭터의 매력과 행위와의 관계를 언급한다. 막장 드라마에는 선과 악이 분명하고, 극단적 성격과 매력을 가진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착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는 긍정적인 행위를, 악독한 외모의 캐릭터는 대체로 나쁜 행동을 한다. 캐릭터의 성격이 변하는 경우에도 가장 먼저 보여주는 것이 외모 변화다. 여배우의 경우 머리를 짧게 자른다거나 얼굴에 점을 찍어서 그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표현하기도 한다. 유치원생 정도만 되어도 이해가 가능하도록 캐릭터의 외향과 행위를 일치시키는 것이다.

최근의 우리 사회를 보면 성인들 중에서도 유치원생 정도의 정신적 성숙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예컨대 올림픽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선수들에 대한 평가에서 그들의 우수한 성적이나 능력보다는 '잘생겼다', '멋있다' 등의 외적 매력만 회자되는 경우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유력한 정치인이나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들을 평가하는 경우에도 능력이나 행위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드러난 외모나 매력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우리 편'은 잘생기고 멋지고 매력적인데 반해 '남의 편'은 추하고, 괴팍하고 매력적이지 않다는 인식이다. 따라서 '우리 편'은 뭘 하더라도 멋지고 옳고, 남의 편은 늘 추하고 나쁘다는 것이다. '우리 편'이라서, '잘생겨서' 옳은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행위를 했기 때문에 매력적인 것이다. 이제는 제발 유치한 수준에서 벗어나자.


김옥태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