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직 근무 중이던 3일 오후 한국일보와 전화 인터뷰를 가진 성원준 칠곡경북대병원 산과 교수의 목소리에는 급박함이 묻어났다. 성 교수는 30년 동안 지방 대학병원에서 출산 현장을 지켜온 베테랑이다. 그는 응급실 붕괴 위기가 눈앞에 뻔히 보이는데도 정부 대책은 지나치게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응급실 붕괴가 현실이 될 경우 "배후진료 과목까지 도미노처럼 쓰러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배후진료는 응급처치를 마친 중증환자에게 수술 등 후속 진료를 하는 것을 뜻한다.
4일 정부는 '응급의료 등 비상진료 대응 브리핑'을 통해 전국 응급실 409개 중 405곳이 24시간 운영 중이고, 병상은 평시의 97.6% 수준으로 유지 중이라고 밝혔다. 응급환자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취지다.
성 교수는 "정부가 숫자의 함정에 빠져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응급실 문이 열려 있고 불이 켜져 있어도 실제 환자를 받지 못한다면 정상 운영이 안 되는 것"이라며 "응급실 종합상황판 숫자가 아니라 환자 수용 여력을 따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실제 지난달 4일 수도권 병원 11곳을 수소문하며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가 뇌 손상을 입은 두 살 유아 사건 당시에도 해당 응급실들은 모두 문이 열려 있었지만 정작 환자를 받지 못했다.
성 교수는 응급실 대란이 현실이 되면 평소 취약했던 지방 의료현장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봤다. 칠곡경북대병원을 포함한 전국 대부분 응급실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5, 6명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의사 수가 이보다 줄어들면 파행 위기를 맞게 된다. 야간과 주말 응급실 운영을 단축한 건국대충주병원과 강원대병원은 응급전문의가 각각 2명, 3명이 남아있는 상태다. 성 교수는 "병원들이 추석 연휴 기간 응급실을 정상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갖고는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문을 닫는 응급실이 늘어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응급실 붕괴가 환자 생명과 직결된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 과목을 연쇄적으로 쓰러트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성 교수는 "주말이나 야간에 과다출혈, 응급분만 상황에 처한 산모가 실려오면 응급실에서 적당한 처치가 우선 이뤄져야 한다"면서 "응급실이 마비돼 응급환자가 곧장 분만장으로 내려오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 응급실이 무너져 배후진료과로 응급환자가 쏟아지고, 이로 인해 배후진료가 마비되면 환자가 다시 응급실로 몰리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고 성 교수는 경고했다. 의료계는 지금의 응급실 위기 원인으로 필수의료를 비롯한 배후진료의 부진을 꼽고 있고 정부도 이를 인정하고 있는데, 응급의료와 필수의료 관계는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다는 얘기다.
응급의료의 중추인 상급병원에서 응급환자 배후진료가 어려운 과목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1일 기준 전국 57개 대학병원 응급실 중 분만이 안 되는 곳은 14곳, 흉부대동맥수술이 안 되는 곳은 16곳, 영유아 장폐색시술이 안 되는 곳은 24곳에 달했다. 의료현장의 위기 체감도는 이런 통계 이상으로 심각하다. 성 교수는 "응급실에 환자가 집중되는 추석 연휴 기간이 최대 고비"라며 "응급 분만이나 위급 상황이 안 터지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토로했다.
정부가 응급실 대란을 막기 위해 내놓은 군의관 및 공보의 250명 파견 계획에 대해 성 교수는 "아무런 효과가 없는 생색내기"라고 꼬집었다. 제아무리 의사라도 응급의료에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다면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업무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
성 교수는 "평시에도 대학병원에 군의관들이 파견돼 일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인턴이 담당하는 환자 진정과 소변줄 교체, 동맥혈 채취 등의 업무에 투입되고 있다"며 "생사를 오가는 응급환자에 대한 처치는 교수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분야"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내놓은 추석 연휴 당직 병의원 4,000곳 운영 대책도 생사를 오가는 응급환자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라고 성 교수가 평가하는 이유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에 따르면 전국 상급병원 응급실에 파견되는 군의관 중 응급의학 전공자는 8명에 불과하다. 더구나 군의관·공보의를 새로 차출해 투입하는 게 아니라 이미 의료기관에 배치된 이들의 근무지를 변경하는 '순환근무(로테이션)' 형태라고 설명했다. 성 교수는 "응급의학 임상 경험이 부족한 의료 인력을 당겨 쓰는 것으로는 응급환자를 살리는 데 한계가 있다"며 "정부가 응급실 현실과 특수성을 제대로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