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4일 '연금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하며 국민연금 재정 '자동조정장치'를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였다. 당장 도입이 아닌 장기적 검토 과제로 분류했지만 연금액이 노후생활을 보장할 만큼 충분치 않은 우리 현실에는 맞지 않다는 우려도 고개를 들었다.
자동조정장치는 인구구조 변화, 경제 상황 등과 연동해 연금액 등이 자동으로 조절되는 제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24개 국가들이 연금개혁과 함께 도입해 운영 중이다. 인구·경제 여건 등을 반영해 연금액을 깎거나 늘리고, 기대여명에 따라 수급 연령을 조정하는 식이다. 그때그때 별도의 논의와 제도 개선이 없어도 연금재정 안정을 꾀할 수 있어 사회적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내놓은 모수개혁안(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2%)과 기금 운용 수익률 5.5% 이상을 적용해 자동조정장치 도입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①급여 지출이 보험료 수입을 초과하는 2036년 ②기금 감소 5년 전인 2049년 ③기금 감소가 시작되는 2054년을 자동조정장치 발동 시기로 가정했다.
2036년 발동하면 수지 적자 시기는 2064년으로 현 제도 유지 시(2041년)보다 23년 늦춰지고, 기금 감소는 32년(2056→2088년) 지연되는 것으로 추계했다. 발동 시기를 2049년, 2054년으로 조정하면 수지 적자와 기금 감소 시기는 2036년 발동 때보다 더 빨리 도래했다. 시나리오상으로는 자동조정장치를 빨리 가동할수록 재정 안정에 도움이 되는 셈이다.
정부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도 기존 연금액은 삭감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연금액은 전년도 소비자물가변동률만큼 오르는데, 가입자 감소율과 기대여명 증가율 등을 감안해 인상분 내에서 조정하겠다는 구상이다. 복지부는 "어떤 경우든 낸 것 보다는 많이 받게 설계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소득 보장 수준에 미칠 변화 등을 고려해 충분한 논의와 세밀한 검토를 거쳐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단서도 달았다.
하지만 국내 경제·인구 여건을 감안해볼 때 자동조정장치는 결국 연금액의 실질가치를 줄이는 쪽으로 작동할 거라는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참여연대와 양대 노총 등 306개 단체가 결성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이날 논평을 통해 "연금의 실질가치를 20%가량 삭감하는 '자동삭감장치'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김태일 고려대 교수는 "자동조정장치는 수지 균형이 이뤄지는 시점을 미리 정해 두고, 예기치 못한 사정으로 그보다 수지 균형이 앞당겨질 때 발동하는 것"이라며 "수지 균형을 뒤로 미루기 위한 게 아니라서 앞뒤가 바뀌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