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대선 후보까지 지낸 미국 보수의 상징적 정치인이자 베트남전쟁 영웅인 고(故)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의 아들이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찍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국립묘지 참배 홍보로 ‘군심(軍心)’을 얻어 보려던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과욕을 부리다 역풍을 맞은 셈이다.
매케인 전 의원의 막내아들인 지미 매케인은 3일(현지시간) 공개된 미국 CNN방송 인터뷰에서 자신이 몇 주 전 민주당에 유권자 등록을 했으며, 11월 선거 때 해리스 부통령에게 투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의 뿌리가 보수라는 점에서 의외의 행보다. 매케인 전 의원은 2008년 미국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민주당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대결했다. 이후 2018년 별세 때까지 참전 영웅이자 보수파 거목으로 존경받았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악연이었다. 2016년 대선 캠페인 때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매케인이 포로로 붙잡힌 적이 있기 때문에 영웅이 아니라는 식으로 비하했고, 이는 매케인 가문 전체가 트럼프 전 대통령과 척지는 배경이 됐다. 그러나 지미 외에는 아직 아무도 공화당까지 등지지는 않았다고 CNN은 전했다.
전향 결정 천명 계기는 지난달 26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버지니아주(州) 알링턴 국립묘지 참배 홍보 시도를 둘러싼 논란이다. 부친과 형을 따라 군에 입대해 현재 육군 정보장교로 복무 중인 그는 그 무렵 요르단과 시리아 간 국경에 있는 미군 기지에 7개월간 파견됐다가 막 돌아온 참이었다. 묘비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보고 자신이 배치되기 직전 해당 기지에서 친(親)이란 무장 세력의 무인기(드론) 공격으로 숨진 미군 동료 3명이 떠올랐다고 그는 털어놨다.
묘지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벌인 일은 지미에게 전사자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무례였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테러 발생 3년이던 당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군 13명의 희생을 기리러 묘지를 찾았고, 트럼프 캠프는 그의 참배 모습을 사진·동영상으로 찍었다. 하지만 묘지 내 정치 행위는 규정 위반이었다. 제지하는 묘지 직원과 캠프 관계자 간 마찰이 빚어졌고, 사흘 뒤 묘지를 관할하는 육군이 캠프 측 폭언과 물리력 행사에 유감을 표시했다. 해리스 부통령도 지난달 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에 “트럼프가 정치적 곡예로 신성한 장소를 모독했다”고 썼다.
지미는 “묘지에 영면한 선열들은 (선거운동 동원에) 선택권이 없다”고 지적했다. 군 복무 경험 부재로 인한 열등감이 무례로 이어진 것 같다는 분석도 내놨다.
폭로도 나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 조카인 프레드 트럼프 3세는 전날 MSNBC방송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군 복무자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는 매케인 전 의원마저 ‘루저(낙오자)’라 불렀다”며 “장애가 있거나 자신보다 열등해 보이면 누구나 트럼프에게 루저”라고 꼬집었다.
일부 테러 희생자 유족까지 끌어들여 반칙이 자기 의도가 아니었다고 강변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3일 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묘지 충돌 사건 존재 자체를 부인하며 “해리스가 지어낸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