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안정과 노후 보장 사이 줄타기 '윤석열표' 연금개혁안... 구조개혁은 미흡

입력
2024.09.05 04:30
1면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2% 제시
"노후 보장 강조한 공론화 결과 감안"
기초연금 40만 원으로, 수급자 기준은 유지
퇴직·개인연금은 원론 수준, 직역연금 언급 無

정부가 보험료율 13%, 명목소득대체율(퇴직 전 소득을 연금이 대체하는 비율) 42% 조합을 국민연금 모수(母數)개혁안으로 제시했다. 청년세대를 위해 보험료율 인상 속도 차등화를 추진하고, 인구구조 변화 등과 연동해 연금액이나 수급 연령 등을 조절하는 '자동조정장치' 도입도 논의한다. 출범 2년 3개월 만에 윤석열 정부가 구체적인 모수개혁안을 내놓으면서 지지부진한 연금개혁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보험료율 13% 이미 공감대, 소득대체율은 논쟁 예고

보건복지부는 4일 오전 국민연금심의위원회를 열어 범정부 차원 '연금개혁 추진계획'을 심의·확정했다. 지난해 10월 수립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에 담은 방안 중 핵심 내용들을 추려 구체화했다.

모수개혁의 골자는 현재 소득의 9%인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3%로 4%포인트 올리고, 2028년까지 40%로 단계적 조정되는 소득대체율을 올해와 같은 42%로 유지하는 것이다. 보험료율 13%는 21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도 시민대표단 숙의토론을 거쳐 도출한 요율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전 국회 막판에 제시한 보험료율도 13%라 재정 안정을 위한 보험료율 인상폭은 4%포인트가 유력하다. 1998년 9%로 오른 뒤 26년간 그대로인 보험료율 인상은 사실상 확정적이다.

반면 소득대체율은 공론화위 결론(50%)과 격차가 크고 민주당(44%) 안보다는 2%포인트 낮다. 시민사회단체와 야권을 중심으로 노후소득 보장 목소리가 높아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날 연금심의위에서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각각 추천한 위원 2명은 소득대체율 42% 등에 이견을 표출했다.

그래도 정부는 공론화 결과를 존중했다는 입장이다. 재정 안정을 강조하는 연금 전문가들은 "소득대체율도 같이 올리면 보험료율 인상 효과가 상쇄된다"며 소득대체율을 40%까지 낮추는 기존 정책 유지를 강조해 왔다. 이스란 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은 "내부적으로 고민이 컸지만 소득 보장도 중요하다는 공론화 결과를 고려했다"며 "40%로 내려가야 하는 것을 42%에서 멈추는 것도 쉽지 않은 의사 결정"이라고 말했다.

기금 운용 장기 수익률은 지난해 5차 재정추계 당시 설정한 4.5%에서 5.5% 이상으로 재설정했다. 모수개혁과 함께 기금 수익률을 1.0%포인트 높이면 현 제도 유지 시 2041년에 시작되는 수지 적자(급여 지출>보험료 수입)는 2054년으로 13년, 기금 소진은 2056년(지난해 통계 반영해 올해 재추계)에서 2072년으로 16년 지연된다.

청년세대는 보험료율 인상 속도 차등, 노년층은 기초연금 인상

정부는 보험료 부담은 크고 혜택은 적은 청년층을 위해 출생 연도별 보험료율 인상 속도 차등화도 추진한다. 보험료율 13%까지 50대는 매년 1%포인트, 40대는 0.5%포인트, 30대는 0.33%포인트, 20대는 0.25%포인트씩 인상하는 방식이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어떤 국가에서도 선례가 없어 세대 간 갈등 여지도 상존한다.

여기에 청년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의 지급 보장을 보다 명확히 규정하는 법률 개정을 추진한다. 출산과 군복무로 인한 소득 공백을 보상하는 보험료 납입기간 추가 산입제도(크레디트) 확대 역시 청년층에 혜택이 돌아간다. 재정 당국과 협의해 현재 국고 투입율이 30%인 크레디트 지원폭도 늘릴 계획이다.

노년층에는 윤석열 대통령 공약이자 국정과제인 기초연금 인상을 내밀었다. 올해 월 약 33만 원인 기초연금을 2026년에 저소득층 노인부터 40만 원으로 올리고, 2027년에는 전체 수급자로 확대한다. 기초연금을 받으면 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가 삭감되는 현 제도도 단계적으로 개선한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최소화하는 대신 기초연금으로 저소득 노년층의 노후소득을 보강하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기준 651만 명인 기초연금 수급자는 노인인구 급증으로 2030년 914만 명으로 불어난다.

야당 제안 거부한 '구조개혁안'은 취약

정부는 21대 국회 폐원 직전인 지난 5월 민주당이 주장한 모수개혁안을 "구조개혁 병행"을 이유로 거부했지만 정작 이번 개혁안에 구조개혁 방안은 많지 않다. 국민연금과 함께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다층 연금제도 구축은 구조개혁의 핵심인데, 정부안에서 퇴직연금은 '장기적 의무화'를 명시했을 뿐 시행 시기가 없고 개인연금은 가입 촉진을 위한 홍보 및 세제 혜택 강화 등 원론적 수준의 방안만 포함됐다.

'세금 먹는 하마'인 공무원·군인연금 등 직역연금과 연계한 개혁안도 포함되지 않았다. 기초연금의 경우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 이하인 수급 대상 범위를 포함해 현 구조를 유지한다. 충분한 논의가 필요해 장기적 검토 과제로 제시한 국민연금 자동조정장치 도입, 의무가입 상한 연령 조정(59세→64세)은 모수개혁과 가깝고 구조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보다 폭넓게 구조개혁까지 아우를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

정부는 연금개혁이 추진될 수 있도록 향후 국회 논의에 참여하고 필요한 자료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연금개혁은 법 개정으로 완성되는 만큼 국회의 논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