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 자동차 업체인 독일 폭스바겐이 창사 87년 만에 처음으로 '독일 내 공장 폐쇄'라는 극약 처방을 적극 검토하고 나섰다. 대규모 인력 감축 방침도 확정했다. 실적 부진을 비용 절감으로 메워야 하는 상황에 처한 탓이다. 전기차 수요 부진과 전 세계적 경기 불황,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산 자동차의 부상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해 있는 독일 자동차산업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2일(현지시간) 독일 타게스샤우 등에 따르면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노사협의회에서 "경제 상황은 다시 악화됐고 새로운 공급 업체가 유럽으로 진출하고 있으며, 특히 독일의 경쟁력은 더욱 뒤처지고 있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그러면서 "독일의 차량 제조 및 부품 공장을 폐쇄하는 방안을 더 이상 배제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폭스바겐은 독일 내에만 볼프스부르크·잘츠기터 등 6곳에서 완성차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특정 공장이 거론되지는 않았으나, 완성차 공장과 부품 공장을 최소 1곳씩 폐쇄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37년 창립한 폭스바겐이 독일 공장의 문을 닫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지막 공장 폐쇄는 1988년이었지만, 이는 미국 웨스트모어랜드에서 단행된 조치였다.
대량 해고도 예고했다. '2029년까지 고용 안정성 보장'을 골자로 경영진과 직장협의회가 체결한 협약의 종료 방침을 발표한 것이다. 이 협약이 적용되는 직원은 약 11만 명인데, 이 중 2만 개가량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독일 빌트와 슈피겔은 전했다.
'자국 공장 폐쇄'라는 초유의 조치를 검토하는 건 그만큼 실적 부진이 심각해서다. 이는 단일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의 판매 부진과 직결된다. 올해 상반기 중국에 인도한 차량은 전년 동기 대비 7%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11.4%나 줄었다. 중국 최대 전기차 기업 비야디(BYD)를 필두로, '가성비'를 내세운 중국산 자동차의 시장 공략으로 타격을 입었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폭스바겐이 세운 목표는 '2026년까지 100억 유로(약 14조8,234억 원)의 비용 절감'이었다.
노동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폭스바겐 노동조합이 속한 독일 금속산업노조(IG메탈)의 니더작센 대표 토르스텐 그뢰거는 "일자리와 사업장을 위협하는 폭스바겐의 무책임한 계획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며 투쟁을 예고했다. 폭스바겐 완성차 공장이 몰려 있는 니더작센주(州)의 총리이자 폭스바겐 감독위원회 위원인 스테판 웨일도 "비용 절감을 위한 다른 선택지부터 고려하라"고 촉구했다.
독일 자동차산업의 위기는 폭스바겐에 국한되지 않는다. 독일 Ifo 경제연구소 발표를 보면, 독일 자동차 관련 기업 43%가 '7월 수요 부진'을 밝혔다. 4월 조사(29%)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세계 3위 자동차 부품업체 ZF가 '독일 내 5만4,000개 일자리 중 최대 1만4,000개를 줄일 것'이라고 발표하는 등 경고음은 이미 곳곳에서 울린다. 글로벌 투자은행 ING의 수석 경제학자 카스텐 브제스키는 "산업계 거물(폭스바겐)이 공장을 폐쇄할 정도로 긴축 조치를 강화하는 것은 (위기 대응) 조치를 크게 늘려야 한다는 경종일 수 있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