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잡은 해리스, 백인 남성 구애 나섰다… 트럼프 쉰 노동절에도 ‘열일’

입력
2024.09.03 17:08
12면
자동차·철강 도시 찾아 친노조 행보
‘지상전’ 벌여 줄 우군 확보 나선 듯
유세·광고 막바지 물량 공세 스퍼트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11월 대선을 두 달 남짓 앞두고 막판 스퍼트에 들어갔다. 노동절인 2일(현지시간)이 출발점이었다. 노동조합의 근거지 격인 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신 등 3개 ‘러스트벨트’(쇠락한 중서부 공업지대) 경합주(州)를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와 나눠 하루에 다 돌았다. 아시아계 흑인 여성이 열세를 보일 게 뻔할 ‘백인 남성’ 노동자 유권자층에 구애하는 포석으로 해석됐다.

바이든 “뭐든 다 하겠다”

공휴일인 이날 해리스가 먼저 찾은 곳은 ‘미국 자동차산업의 요람’인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였다. 연설에서 그는 노조가 미국의 발전과 중산층 확대에 기여했다며 “노조가 강해야 미국도 강하다”고 말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노동관계위원회(NLRB·노동자 권익을 보호하는 미국 연방기구)에 노조 파괴자를 임명하는 등 반(反)노조 행태를 보였다고 지적하며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모든 노동자가 조직할 자유가 있는 미래를 위해 싸운다”고도 강조했다.

‘철강 도시’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도 들렀다. 해리스는 피츠버그에 본사를 둔 미국 대표 철강회사 US스틸을 일본제철이 인수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표명한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피츠버그 유세는 바이든도 함께했다. 7월 말 재선 도전 포기 후 해리스 유세에 처음 참석한 그는 “(해리스를)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겠다”며 “트럼프를 다시 패배자로 만들 준비가 됐냐”고 청중에게 물었다.

월즈는 위스콘신주 밀워키를 따로 찾아 지역 노조가 주최한 축제에서 연설했다. 트럼프가 다시 집권하면 초과근무 수당을 깎고 전국민건강보험법(ACA·일명 ‘오바마케어’)을 폐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속도로에서 유세 차량 3대가 사고를 당했지만, 월즈는 사고를 피했고 크게 다친 사람도 없었다.

전화 부스 속 칼싸움

이날 해리스가 노조를 살뜰히 챙긴 게 전통적 지지층 결집 목적만은 아니었다. 뉴욕타임스는 노조가 1980년대의 절반 규모로 쪼그라든 데다 백인 남성 노동자 상당수가 ‘트럼프 편’으로 기운 게 현실이라며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현장에서 힘을 보태겠다는 약속을 노조 지도자들이 했다고 전했다.

실제 해리스 캠프가 노조에 바라는 역할은 ‘설득될 가망이 있는 주변 유권자를 상대로 일일이 지상전을 벌여 줄 우군’일 공산이 크다. 캠프 선거대책위원장 젠 오맬리 딜런은 1일 보도자료에서 “몇 개 주에서 승부가 결정될 선거인 만큼 지상전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트럼프를 좋아하지 않는 부동층 유권자군에 트럼프보다 덜 유명한 해리스와 월즈를 소개할 수 있는 적극적 캠페인이 막바지에는 긴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징색이 파란색인 민주당의 지지세가 강해 ‘블루월’(파란 장벽)로 불려 온 러스트벨트는 일단 민주당의 대선 후보 교체를 반긴 모양새다. 여론조사 지지율 평균을 내는 ‘파이브서티에이트(538)’, ‘리얼클리어폴리틱스’, ‘실버 불레틴’ 등 선거분석기관 3곳 모두 해리스가 3개 주에서 근소한 우위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2016, 2020년 대선에서 여론조사가 가장 크게 빗나간 지역이 러스트벨트다. 두 번 다 트럼프를 과소평가했다. 민주당으로선 끝까지 안심할 수 없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공중전화 부스 속에서 칼싸움이 벌어지는 형국”이라고 표현했다.

노동 계급 백인 남성은 민주당이 포기할 수 없는 러스트벨트 유권자 집단이다. 1일 공개된 ABC방송·입소스의 전국 단위 설문 결과를 보면 남녀 모두 ‘13%포인트 트럼프 우위’였던 백인 유권자 지지율이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성별에 따라 반대로 움직였다. 여성에서는 격차가 2%포인트까지 줄었지만, 남성은 거꾸로 21%포인트까지 더 벌어졌다.

외연 확대 vs 저지

해리스 캠프의 막판 전략은 물량 공세다. 월등한 경합 지역 조직력을 토대로 지상전을 벌이며 유세와 광고에도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쏟아붓겠다는 것이다. 당장 ‘트럼프 안방’인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생식권’(여성의 출산 결정권) 테마 버스 투어 유세를 3일 시작하고, 남은 두 달여간 디지털·TV 광고에 3억7,000만 달러(약 5,000억 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접점을 늘려 지지 기반 외연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트럼프 측은 대조적이다. 이달 첫 주 초반 공개 행사 참석 계획이 없다. 노동절 행보도 “미국 노동자가 일군 경제 강국을 카멀라와 바이든이 다 망쳤다”는 요지의 성명 발표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한 재임 중 노동자 지원 정책 홍보로 갈음했다.

외연 확장이 쉽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캠페인도 수세적이다. 인신공격을 반복하고, 광고도 ‘해리스 때리기’에 집중하는 식이다. 상대의 상승세를 꺾고 지지세를 끌어내리는 네거티브 공세 위주 전략이다. 트럼프 캠프 인사는 워싱턴포스트에 “사람들이 우리 후보에 대해서는 다 알지만 해리스 관련 정보는 많지 않다. 지금은 우리가 그를 (부정적으로) 정의하려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위용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