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여름은 없었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속속 확인되고 있다. 9월로 접어드는데 낮 기온 30도는 예삿일이고, 열대야의 뒤끝도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연천을 지날 때만 해도 한여름인 줄 알았는데, 철원으로 접어드니 하늘도 들판도 완벽한 가을이었다. 드넓은 평야엔 황금물결이 넘실거리고 일부는 이미 수확을 마친 상태였다. 오는 8일엔 황금빛 평야를 누비는 철원DMZ국제평화마라톤 대회가 예정돼 있다.
철원평야는 산악이 주를 이루는 강원도에서 규모가 가장 큰 평야다. 현무암이 풍화된 비옥한 토양은 논농사에 적합해 철원 쌀은 예로부터 명성을 떨쳤다. 소이산은 철원평야를 가까이서 가장 쉽게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들판 한가운데에 오똑 솟은 해발 362m의 작은 산이지만 세상 어느 곳보다 넓은 풍광을 조망할 수 있다. 때문에 고려시대부터 외적의 출현을 알리던 봉수대가 있었고, 남북으로 분단된 뒤에는 지뢰밭과 민간인통제구역에 갇혀 수십 년간 사람의 발길을 거부해왔다. 군 당국과의 협의로 길이 열린 게 불과 10여 년 전이다.
산 정상까지는 모노레일로 쉽게 오를 수 있다. 철원역사문화공원 철원역에서 출발한 모노레일은 사람이 걷는 속도만큼 느리게 움직인다. 약 1㎞ 이동하는데 10분이 넘게 걸린다. 상부 정류장에 내리면 짧은 구간 덱 산책로가 이어지고 산등성이에 오르면 정면으로 시원하게 평야가 펼쳐진다. 그 옛날 소나무가 많아 재송평이라 부르는 들판이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들판이 끝나는 곳은 비무장지대(DMZ)다. 70여 년 인적이 드나들 수 없는 땅은 원시림으로 변했다. 언젠가는 제 값어치를 찾을 생태의 보고다. 검푸른 원시림 너머로 북한의 들판이 아른거리고, 그 뒤로 높고 낮은 산 능선이 그림처럼 병풍을 두르고 있다. 황금들판과 원시림 그리고 북녘 땅 산줄기까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광이다.
왼쪽 낮은 산자락은 한국전쟁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백마고지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남북 양측은 이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10일 동안 12차례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을 벌였다. 국군은 약 22만 발, 중공군은 5만5,000발의 포탄을 쏟아부었고, 이 과정에서 중공군 1만 명, 국군 3,500여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현재 태극기와 유엔 깃발이 나부끼는 백마고지 뒤로 보이는 산줄기는 모두 북한 땅이다. 백마고지 오른쪽으로 해발 780m 기암괴석의 고암산이 보인다. 이곳에서 전투를 지휘한 김일성이 곡식 창고인 철원평야를 빼앗기고 통곡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우측으로 눈을 돌리면 제법 이국적인 산 능선이 보인다. 역시 북한 땅 낙타봉이다. 옴폭하게 들어간 모양새가 자못 이국적이다. 바로 앞 평야에 섬처럼 떠 있는 낮은 봉우리는 남한 땅 아이스크림고지다. 이곳에서도 피아 간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극심한 포격으로 정상 부위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흘러 이렇게 불리는데 원래 이름은 삽슬봉 혹은 투구봉이다.
현재 시설을 보수하는 중이라 소이산 전망대까지는 갈 수 없는 상황이다. 대신 정상 조금 못 미치는 곳에 전망대 겸 정자를 세워 놓았다. 높이가 다소 아쉽지만 철원평야의 이국적인 풍광을 즐기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겨울이 긴 철원은 모내기와 벼 수확이 어느 곳보다 빠르다. 추석 전에는 대부분 수확이 끝날 예정이라 황금들판을 보려면 조금 서둘러야 한다.
그 옛날 궁예가 태봉국을 세우고 한반도의 중심 국가를 꿈꾸었던 땅 철원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기 전까지 인구 2만 명에 이르는 큰 도시였다. 모노레일이 출발하는 철원역사공원에서 옛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 시절 철원역을 비롯해 우체국, 소방서, 금융조합, 학교, 극장, 여관과 상점 등을 재현해 놓았다. 이를테면 ‘미니 철원’인데, 내부를 대부분 전시실과 체험 시설로 꾸몄고 상점과 다방, 식당은 실제 관광객을 대상으로 영업 중이다.
가장 상징적인 건물은 철원역이다. 1914년 개통한 경원선의 중간 지점이자 금강산 전기철도의 출발점이었다. 1931년 개통한 금강산 전기철도는 철원역에서 내금강까지 116.6㎞로 4시간 반이 소요돼 철원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당일치기로 수학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고 한다.
철원극장은 땡볕을 피해 잠시 쉬기 좋은 공간이다. 1960~70년대 복고풍으로 제작한 철원 홍보 영화를 반복 상영하고 있다. 철원의 관광지와 농산물 소개가 주요 내용이다. ‘쪼개기는 철원사과, 제사상에는 철원사과, 저글링은 철원사과, 아 몰라 그냥 철원사과!’ 억지스럽지만 코믹한 영상이 웃음을 자아낸다. 신라시대에 창건한 사찰로 국보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보유한 도피안사가 인근에 있다. 피안(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한다는 의미를 지닌 절이다.
철원은 제주도를 제외하면 국내에서 현무암이 가장 흔한 지역이다. 철원평야는 신생대 제4기 용암류가 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리면서 형성된 용암대지다. 대략 54만 년 전에서 12만 년 전 사이 최대 11번의 열하분출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철원의 강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평야 아래 깊은 협곡을 이루며 흐르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용암대지에 물길을 내며 흐른 한탄강은 곳곳에 현무암 절벽, 주상절리와 폭포 등 독특한 지형과 경관을 빚었다. 주상절리길(잔도) 3.6㎞ 구간이 철원 한탄강지질공원의 대표 관광지로 알려져 있지만, 오랜 세월 입소문을 탄 명소는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고석정이 대표적이다. 서기 610년 신라 진평왕 때 강 중간에 우뚝 솟은 고석바위 맞은편에 2층 누각을 짓고 고석정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조선 명종 때는 의적 임꺽정이 정자 건너편에 석성을 쌓고 웅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국전쟁 때 소실된 정자는 1971년 복원하고 1989년 개축했다.
정자에서 내려다보면 강 중앙에 위치한 높이 10m 정도의 바위에 소나무가 기묘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어지는 협곡은 오랜 세월 닳고 닳은 바위가 빚은 기암의 연속이다. 여름 한탄강은 래프팅 명소다. 상류에서 물길을 타고 내려온 뗏목꾼들이 고석정 인근 바위에 정박하고 잠시 물놀이를 즐긴다.
강 위 평지는 ‘고석정 국민관광지’로 말끔하게 단장해 한가로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최근에는 인근에 조성한 ‘고석정꽃밭’이 고석정보다 더 주목받는다. 봄가을 두 차례 꽃 잔치가 열리는데, 올 가을 꽃밭은 지난달 30일 개장해 10월 말까지 운영된다. 여러 색깔의 불꽃맨드라미를 비롯해 버베나, 천일홍, 백일홍, 댑싸리 등 20여 종의 가을 꽃이 눈부시다.
축구장 33개 크기의 꽃밭 부지는 1971년부터 2015년까지 군부대에서 포사격장으로 이용했던 곳이다. 화약 연기 매캐하던 들판이 은은한 향기와 화려한 색감을 뽐내는 꽃밭으로 변신했다. 입장료는 1만 원으로 비싼 편인데 절반인 5,000원은 철원의 상가에서 이용할 수 있는 지역 상품권으로 되돌려준다.
고석정에서 상류로 송대소, 직탕폭포 등의 명소가 이어진다. 송대소는 7~8개의 상이한 지층으로 형성된 최고 40m 절벽 아래 푸른 물웅덩이가 절경을 이룬 곳이다. 햇빛의 방향에 따라 붉은색, 회색, 검은색, 황토색 등 알록달록한 색깔이 드러나 ‘주상절리 팔레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바로 하류에 협곡을 가로지르는 한탄강무지개교가 놓여 있다. 살짝 흔들거리는 다리 아래로 물살이 부서진다.
조금 위 직탕폭포에는 ‘한국의 나이아가라’라는 수식이 붙었다. 규모만 보면 터무니없는 과장이다. 직탕폭포는 오랜 기간 폭포수가 떨어지며 침식작용이 진행되고, 현무암 기둥이 계속 무너져 폭포의 위치가 상류로 조금씩 후퇴하며 형성됐다. 이러한 두부침식을 겪으며 옆으로 길어져 나이아가라폭포와 유사한 형태를 이루게 됐다는 게 지질학적 설명이다. 높이는 3m에 불과한데 너비가 80여 m에 달해 얻은 별칭이다. 폭포 바로 위에 강을 건널 수 있는 현무암 돌다리가 놓여 있다.
삼부연폭포는 한탄강과 거리가 있지만 명성산 기암절벽에서 떨어져 내리는 모양새가 시원하고 웅장해 철원 9경의 하나로 꼽힌다. 삼부연이란 가마솥과 같이 생긴 연못이 세 개라는 뜻이다. 물줄기가 세 번 꺾어지고 폭포 하부가 솥처럼 움푹 파여 이렇게 부른다. 세 마리 이무기가 용이 돼 승천한 자국이라는 전설도 전해진다. 신철원(갈말읍)에서 용화저수지로 이어지는 도로 바로 옆에 위치해 등산을 하지 않고도 시원한 물줄기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