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이래도 안 받아?... '제3자 추천' 특검법 야당이 먼저 냈다

입력
2024.09.0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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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당 제외 야5당 공조 법안 발의
대법원장 특검 추천권+야권 비토권
진상 규명 진정성 적극 어필하면서도
여당 내부 자중지란 만들려는 포석도

야권이 '제3자 추천' 방식의 채 상병 특검법을 3일 발의했다. 대법원장이 특검 후보를 추천해 야권이 최종 동의하는 제3자 추천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먼저 제시한 해법이다. 하지만 한 대표가 주저하는 사이 야당이 선수를 쳤다. 한 대표의 선택을 압박하면서 특검 자체에 반대하는 여권의 자중지란을 유도하려는 노림수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개혁신당을 제외한 5개 야당의 188명 의원이 법안에 이름을 올렸다. 채 상병 특검법을 촉구해온 더불어민주당은 그간 야권이 특검을 추천하는 방식을 고수해왔다. 반면 이번에는 대법원장이 특검 후보 4명을 추천하고, 이 중에서 야권이 2명을 추려 윤석열 대통령에게 최종 추천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한 대법원장 추천 후보가 부적합하다고 판단하면 다시 추천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근거(비토권)를 추가했다.

야당이 채 상병 특검법을 발의한 것은 네 번째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에 막혀 국회 재의결 과정에서 번번이 폐기됐다. 이번에는 한 대표의 방식을 수용해 법안 통과의 돌파구를 마련한 셈이다. 키를 쥔 민주당은 당초 제3자 추천 방식에 부정적이었지만 이재명 대표 연임 확정 이후 입장을 바꿨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대법원장)에게 특검 추천 권한을 줘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있지만 한 대표와 국민의힘을 설득할 공간을 만들어 채 상병 특검법을 꼭 통과시키겠다는 의지가 더 강력했다"고 설명했다.

한 대표가 꺼낸 제3자 추천 특검법인 만큼 여당의 소신파 의원들이 호응할 것이라는 기대도 반영됐다. 법안에 이름을 올린 야당 의원 188명이 모두 찬성한다고 가정할 경우,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국민의힘에서 10명 안팎이 찬성으로 돌아서면 법안은 국회를 통과한다. 앞서 7월 재의결 당시 여당에서 4명이 반대 또는 무효표를 던져 이탈한 전례가 있다.

제3자 특검법은 야당이 한 대표와 여당을 동시에 몰아붙일 수 있는 카드다. 한 대표는 제3자 특검법 발의를 공언했지만 당내 친윤석열(친윤)계의 반발에 막혀 지지부진한 상태다. 친윤계와 친한동훈(친한)계를 갈라치는데 안성맞춤인 셈이다. 김용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법안 발의 직후 "반드시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정치적 결정과 결단과 양보의 개념이자, 한 대표가 국민에게 한 약속을 이행하라는 강력한 촉구를 담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세 차례 법안과 비교해 이번에는 수사기간을 연장하고 인력을 보강하도록 했다. 특검 수사기간은 당초 70일에서 90일로, 파견 검사 규모는 20명에서 30명으로 늘렸다. 특검에 더 힘을 실어준 것이다. 다만 파견인원의 10% 이상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서 받는 조항을 추가했다.

반면 장경태 민주당 의원과 김규현 변호사가 합작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구명로비설을 기획했다는 '제보공작 의혹'은 빠졌다. 국민의힘이 줄곧 지적해온 부분이다. 다만 민주당은 여당이 제보공작 내용까지 다룰 법안을 발의하면 얼마든지 논의해볼 수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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