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권 당시 국가기관으로부터 고문을 당하고 프락치(신분을 속이고 활동하는 정보원) 활동을 강요 당한 피해자들이,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에서 대법원 판단을 구하기 위해 상고장을 제출했다. 앞서 하급심이 국가 배상 책임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재판 및 진실 규명 과정에서 벌어진 국가의 2차 가해는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에 불복하는 취지다.
2일 고 이종명 목사 유족과 박만규 목사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원곡의 최정규 변호사는 "항소심 재판부가 형식적 법령 위반 여부만을 검토해 피고 대한민국에 면죄부를 줬다"면서 "원고들이 상고를 통해 대법원 판단을 받겠단 의사를 밝혀 이날 상고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서울고법 민사8-1부(부장 김태호)는 지난달 29일 이 목사 유족과 박 목사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두 목사 측의 항소를 기각하고 "국가가 1인당 9,000만 원씩 지급해야 한다"는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이 목사 등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학생군사교육단(ROTC) 후보생이던 1983년 9월 육군 보안사령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동료들 동향을 감시·보고하는 프락치로 활동했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이들은 지난해 11월 1심에서 일부 승소했다. 하지만 정부가 진실화해위 권고 사항을 이행하지 않는 등 '2차 가해'를 했다는 점을 인정받기 위해 항소했다. 앞서 2022년 11월 진화위는 정부에 △국가의 사과 △피해 회복 조치 △피해 사실 조사기구 설치 등을 권고했다. 원고 측은 "이 권고 사항들을 정부가 이행하지 않았고 보도자료를 통해 간접적으로 사과를 했다"고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6월 한 차례 선고를 미루면서 국가에 권고사항 이행 여부를 제출하라고 요청하기도 했지만, 결국 원고들 주장을 받아들이진 않았다. 재판부는 "정부가 과거사정리법에 규정된 노력 의무를 위반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가는 과거사정리위원회 권고를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행을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권고사항과 이행 내용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법령을 위반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이 목사 유족과 박 목사 측은 대법원에서 끝까지 다퉈보겠단 입장이다. 이들은 "정부의 태도는 인권 존중, 권력 남용 금지, 신의성실 등 준칙을 위반해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