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공화 양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 중도층 포섭 경쟁에 불이 붙었다. 11월 대선 승패를 가를 핵심 경합주(州) 접전에서 이기기 위해서다. 집권하면 입장이 도로 바뀔 게 뻔하다며 상대를 손가락질하는 행태도 비슷하다.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CNN방송 인터뷰를 통해 대통령이 되면 ‘프래킹’을 금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프래킹은 암반에 액체를 고압으로 주입해 균열을 내고 석유·가스를 추출하는 공법이다. 미국의 중동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셰일 혁명’에 기여했지만 환경과 인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평가도 있다. 해리스 부통령도 2020년 민주당 대선 경선 출마 때까지 반대했으나 인터뷰에서 “프래킹을 금지하지 않고도 청정에너지를 확대할 수 있다”며 타협했다. 화석 에너지원 적극 개발을 주장해 온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줄곧 프래킹 찬성론자였다.
‘재생산권(여성의 출산 관련 결정권·Reproductive rights)’의 경우 방향이 반대다. 권리 옹호로 공화당과 차별화해 온 해리스 편으로 트럼프 입장이 이동 중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미시간주 유세에서 난임 부부를 위한 체외인공수정(IVF·시험관) 시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거나 보험사가 지불하도록 의무화하겠다고 공약했다.
임신중지(낙태) 허용 이슈 역시 마찬가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일찌감치 각 주가 결정할 문제로 가닥을 잡고 지난달 공화당 정강 배제를 통해 당이 오래 유지해 온 ‘연방 차원 금지 지지’를 철회했다. 지난달 3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한 마리화나(대마) 소량 소지 합법화 동의 선언도 ‘좌클릭’이다.
두 후보 정책의 중도 수렴은 선거 전략 차원이다. 해리스 부통령의 친환경 포기는 4년 전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긴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등 민주당 우세 격전지 ‘블루월(파란 장벽·민주당 상징색이 파란색)’ 3개 주 중 가스 산업 비중이 상당한 펜실베이니아와 미시간의 ‘표심’을 의식한 행보라고 CNN은 해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집중 설득 표적은 재생산권에 관한 한 자유를 우선시하는 교외 중도보수 백인 여성이다. 마침 그는 지난달 30일 워싱턴에서 열린 보수 단체 ‘자유를 위한 엄마들’(Moms for Liberty)의 연례 행사에도 등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둘 다 승리에 사활을 걸고 있는 주는 ‘러스트벨트’(쇠락한 중서부 공업지대)에 속한 펜실베이니아와 ‘선벨트’(일조량 많은 남부)의 조지아다. 펜실베이니아는 해리스가, 조지아는 트럼프가 각각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경합주라는 게 신문의 분석이다.
공략 대상이 겹치다 보니 상호 비난전도 뜨겁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펜실베이니아 유세에서 “해리스가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의 트럼프 선거 구호)’ 모자를 쓸 때가 올 것”이라고 비아냥댔다. ‘상황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해리스 캠프는 같은 날 트럼프의 IVF 지원 공약을 “뻔뻔한 거짓말”로 규정했다.
민주당 부통령 후보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의 부인 그웬 월즈 여사도 트럼프 비판에 합류했다. 미국 정치매체 더힐에 따르면 월즈 여사는 한 유세에서 “트럼프는 낙태뿐 아니라 IVF 시술에 대한 여성의 접근을 어렵게 한 인물”이라며 “공화당도 낙태와 IVF 시술을 위협하는 입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월즈 여사는 과거 7년간 난임 치료를 거쳐 2001년 인공수정을 통해 첫째 딸 호프를 출산한 경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