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성범죄가 주목받자 온라인에 유출된 피해 영상이나 개인 신상정보를 지워 달라는 요청이 급증했어요. 의뢰인 요구대로 영상을 지우자니 범죄 증거 인멸이 되고, 그냥 두자니 피해 상황을 방치하는 셈이라 딜레마입니다."
국내 '디지털 장의사' 업체 사라짐컴퍼니를 운영 중인 최태운 대표의 최근 고민거리다. '디지털 장의사'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온라인에 퍼진 데이터를 삭제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를 말한다. 국내에는 40개 정도의 업체가 영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대표는 30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디지털 장의사라는 이름 때문에 고인의 온라인 기록을 삭제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 업무의 절반 이상은 연인 등이 동의 없이 촬영해 유포한 영상 등 성범죄 관련 콘텐츠를 지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공 분야에선 여성가족부 산하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가 피해 콘텐츠의 삭제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데, '디지털 장의사'도 비슷한 사업을 하는 셈이다.
최근 딥페이크 범죄 실태가 드러나면서 사라짐컴퍼니에는 이달 32명으로부터 관련 데이터의 삭제 의뢰가 들어왔다. 최 대표는 "공교롭게도 의뢰자가 모두 딥페이크 영상 관리나 유통에 관여했던 사람들"이라며 "모두 수사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만약 피해자와 합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상을 삭제해 달라는 의뢰를 수락한다면 가해자의 증거 인멸을 돕는 셈이 된다.
최 대표는 "피해자가 유출된 영상 삭제를 동의한 경우에만 의뢰를 맡는다"면서 "수사를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연락한 사람들은 거절한다"고 강조했다. 이달 의뢰받은 건 중 피해자 동의가 이뤄져 사라짐컴퍼니가 유출 영상 등 삭제에 착수한 사례는 6건이었다.
온라인에 퍼진 가해자·피해자의 신상정보나 딥페이크 영상을 삭제하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해당 웹사이트 운영자에게 게시글 수정 및 삭제를 요청하는 것이다. 만약 응하지 않을 경우 '디지털 장의사'는 해킹을 통해 강제로 게시글을 없애기도 한다. 최 대표는 "해킹은 위법 소지가 있는 행위이지만, 정당한 삭제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상대방에는 이런 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해킹을 이유로 고소나 고발을 당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사라짐컴퍼니에는 해킹 능력을 보유한 정보기술(IT) 전문가가 5명 있다.
만약 딥페이크 영상이 다크웹(특정 방식으로만 접속 가능한 비밀 웹사이트)에 유출된 경우 삭제 난이도는 올라간다. 최 대표는 "일반 사이트를 해킹하는 데 5분이 걸린다면 다크웹은 30분이 소요된다"면서 "다크웹을 만든 사람도 만만찮은 IT 전문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다크웹 자체가 폐쇄적인 터라 피해 사실을 인지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따라서 의뢰 건수도 많지 않은 편이다. 딥페이크 영상이 주로 유통되는 텔레그램에 대해선 "아무리 해킹을 잘하는 사람도 보안망을 뚫기가 불가능하다"고 최 대표는 설명했다.
사라짐컴퍼니가 성범죄 관련 데이터 삭제 업무를 도맡아 왔던 만큼 매출도 늘었다. 최 대표는 "이달 순수익이 평소보다 10배 가까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피해 사례가 늘어났다는 뜻이어서 씁쓸한 이면이다. 이에 최 대표는 "미성년자 딥페이크 피해자의 경우 우리에게 요청만 하면 무료로 삭제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