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성 사진 도용한 '트럼프 지지' 딥페이크까지... "제3국의 미 대선 개입?"

입력
2024.08.29 18:30
CNN, '트럼프 지지' 가짜 X 계정 56개 분석 보도
유럽 인플루언서 여성들 "사진 도용·AI 합성" 피해
"문법 오류… 외국 행위자의 미 대선 개입 가능성"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지지하나요? 동의한다면, 성조기 이모티콘으로 (이 게시물에) 응답해 줘요!"

미국 대선 경합주(州)인 위스콘신 출신의 32세 여성 루나는 지난 3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옛 트위터)에 처음 등장했다. 5개월 만에 팔로어 3만 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주로 올린 게시물은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 구호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홍보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루나는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 인공지능(AI)이 만들어낸 가상 인물이었다.

'트럼프 지지' 가짜 X 계정… 유럽 인플루언서 사진 도용

미국 CNN방송은 28일(현지시간) 영국 비정부기구(NGO) 정보탄력성센터(CIR)와 공동 조사를 수행한 결과,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 JD 밴스 상원의원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가짜 X 계정 56개를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CNN에 따르면 이들 중 대다수는 독일·네덜란드·덴마크 등에서 활동하는 유럽 인플루언서 여성의 사진을 도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루나가 올린 사진이나 글 역시 딥페이크(AI 기반 이미지 합성) 기술로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루나' 계정의 피해자인 독일의 패션 인플루언서 데비 네더로프는 CNN 인터뷰에서 "독일 작은 마을 출신인 내가 미국 정치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매일 내 얼굴과 내 몸이 도난당하고 있는데, 그것은 분명히 내가 아니다"라며 분노했다. 다만 가짜 계정을 만들어 네더로프의 사진을 도용한 가해자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일단 트럼프 대선 캠프의 연루 흔적은 아직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짜 계정에 문법 오류… "외국 조직 배후일 수도"

CNN은 해당 계정들에서 체계적이고 동일한 패턴이 발견됐다고 전했다. 모두 △젊고 매력적인 여성 얼굴이 담긴 프로필 사진 △정기적으로 올라오는 새 게시물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 호소 △'#마가애국자들' '#마가2024' '#IFBAP(모든 애국자들 '맞팔'합니다)' 등 해시태그 사용 등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는 것이다.

특히 게시글에 '문법적 오류'가 많다는 점에서 외국 세력의 개입 가능성에 무게가 쏠린다. CNN은 "가짜 계정들은 비슷한 메시지를 올리는데, 문법적 오류가 자주 나타난다"며 이같이 전했다. 에밀리 혼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은 "새 게시물의 정기적 업데이트 사실은 배후에 외국 조직이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며 "정교함 수준을 보면 러시아·이란·중국 등 적대국 행위자의 미국 대선(11월 5일) 개입 시도일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피해 여성 속출에도 X는 묵묵부답

전 세계에서 피해 여성들이 속출하고 있는데도 정작 플랫폼 기업은 미온적 태도를 보인다는 비판도 나온다. X 소유주인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 인수 직후인 2022년 12월, 외부 자문 기구인 '신뢰 및 안전 위원회'를 해산한 바 있다. 트위터 내 허위정보와 혐오 게시물 등의 차단을 담당했던 기구였다.

CNN은 "대다수 피해 인플루언서가 신원 도용을 신고했지만, 업체 측에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며 "온라인 영역에서 여성의 신체적 자율권에 대한 위협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당초 이번 사안에 대한 논평이나 답변을 거부하던 X는 보도가 이뤄지기 24시간 전에야 문제의 계정 대다수를 삭제했다고 방송은 덧붙였다.

손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