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성범죄 불패의 나라’다. ‘n번방 사건’이 충격과 공포를 안긴 게 4년 전이다. 대한민국은 변한 게 없다.
실체가 드러난 ‘딥페이크(불법 이미지 합성물) 성범죄’를 보면 경악스럽다. 대놓고 지인을 대상으로 삼았다. 지역·학교·직업별로 잘게 나눈 ‘겹지인(겹치는 지인)방’을 만들었다. ‘사촌방’ ‘엄마방’ ‘누나방’ ‘여동생방’도 있었다는 데선 역겹다 못해 참담하다. 경찰이 들여다보는 텔레그램 딥페이크 채널들은 참여자가 22만 명부터 42만 명 규모에 이른다. n번방 가담자는 26만 명이었다. 몇 십 미터만 가도 만나는 편의점 수가 전국 5만5,000개고, 도로를 달리는 택시는 24만 대다. 온라인 성 착취 가해자는 편의점보다 흔하고 택시만큼 일상적이라는 얘기다. 초등학생 틈새까지 파고들었다니,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우리는 무얼 했나.
성매매라고 다르지 않다. 올해로 성매매특별법이 만들어진 지 20년이다. 그 세월만큼 성매매가 줄었을까. 외려 더 교활해졌다. ‘한겨레21’이 실태를 파헤쳤다. ‘○○스파’, ‘△△힐링테라피’로 간판만 바꾼 성매매 업소들이 서울의 노른자 땅 곳곳에 둥지를 틀었다. 26년째 강남에서 성업 중인 곳도 있다. 인근엔 학교들이 있다. 단속에 걸려 형사처분을 받아도 영업엔 큰 타격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이 벌금형인 데다, 벌어들이는 돈이 벌금을 압도하니까. 임대 수익으로 재미를 보니 건물주도 눈감는다. ‘키스방 알리미’도 등장했단 걸 알았다. 각종 성매매 업소 정보를 알려주고 예약도 대행하는 플랫폼이다. 한 알리미는 회원이 1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성매매하기가 이렇게 손쉽다.
이 나라에서 성범죄는 왜 불패인가. 돈이 돼서다. 처벌이 가벼워서다. 젠더 폭력에 무감해서다.
n번방처럼 딥페이크방에서도 돈이 오갔다. 법을 비웃으며 성매매업이 건재한 이유? 그 역시 수익 때문이다. 돈이 돼도 처벌이 무겁다면 성범죄가 거대 산업이 되지는 못했을 테다. 딥페이크 판례만 봐도 그렇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딥페이크 성범죄로 기소된 사건은 고작 71건, 이 중 35건이 집행유예에 그쳤다. 유통방 가담자들엔 그나마도 처벌 근거를 찾기 어렵다. 성폭력처벌법상 불법 합성물을 단순 소지하거나 시청한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 수사는 적극적인가. ‘텔레그램 서버가 국외에 있어 피의자를 특정하기 어렵다’며 수사가 지지부진한 사이 피해자들이 방에 잠입해 피의자를 찾아내고, 중학생이 제보를 취합해 ‘딥페이크 피해 학교 지도’를 만들었다.
딥페이크도, 성매매도 본질은 성 착취다. 여성의 몸을 손쉬운 놀잇감, 욕구 해소의 도구로 여기는 구조적 차별에서 기인한다. ‘그래도 된다’는 이 사회의 뿌리 깊은 방조와 묵인을 자양분 삼아 성범죄는 여기까지 왔다. 젠더 폭력에 무감한 사회의 소산이다.
하긴, 원내 정당 인사들이 딥페이크 성범죄를 두고 “특정 성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급발진 젠더팔이”(허은아 개혁신당 대표), “위협이 과대평가됐다”(같은 당 이준석 의원)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세상이다. 다른 반인륜 범죄를 두고도 “급발진” “과대평가” 운운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런 얘기가 여성 대표 입에서 나와 더 서글프다. ‘나도 여자지만’을 은연중 깔고 있어서다. 이 사안의 본질에 물타기하려는 의도인지 몰라도, 그건 자기기만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 모두가 ‘성범죄 불패 대한민국’의 공범자가 아니고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