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날 해수욕장에 나란히 앉은 모녀. “가서 놀아”라는 엄마의 말에 어린 딸은 대답한다. “싫어. 나 가면 또 모르는 아저씨들이랑 놀 거잖아.” 이처럼 ‘대책 없는 엄마와 쿨한 딸의 동거 이야기’를 다룬 웹툰 ‘남남’이 지난달 단행본 기준 완결을 맺었다. 2019년부터 정영롱 작가가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연재한 이 작품은 성인용 웹툰임에도 2,500만 이상의 누적 조회수를 기록하며 책으로까지 만들어졌다. 온라인에서는 지난해 끝났고, 배우 전혜진, 수영, 안재욱이 출연한 같은 제목의 드라마도 지난해 ENA에서 방영됐다.
정 작가는 한국일보 서면 인터뷰에서 “종이로 된 만화책을 읽으며 만화를 시작한 사람이기 때문에 웹툰보다는 손으로 직접 만질 수 있는 책으로 ‘남남’이 나왔다는 게 정말 기뻤다”라고 말했다.
웹툰의 본격 연재 이전 공개한 프롤로그였던 해수욕장 장면에서 보듯 주인공인 미혼모 ‘은미’는 중년 여성, 특히 어머니에게 금기시되는 성적 욕망을 주저 없이 드러낸다. ‘남남’의 1화는 세월이 흘러 사회인이 된 딸 ‘진희’가 “더운 여름에 남자친구랑 박 터지게 싸우고 돌아”와 “거실에서 자위 중인 엄마를 목격”하면서 시작된다. 웹툰은 물론 그 어떤 콘텐츠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전개에 1화가 공개되자마자 격렬한 갑론을박이 일었다. ‘지나치게 극단적’이라는 비판과 ‘다들 쉬쉬하지만 필요한 이야기’라는 옹호가 맞섰다.
당시 정 작가는 이런 뜨거운 반응을 예상했을까. 그는 “자위라는 게 자연스러운 행위이고, 그 장면으로 무언가를 거하게 표현하려는 바는 사실 없었기 때문에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1화에 달린 무수한 찬반 댓글을 보고 ‘앗, 이게 그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나’라고 잠깐 고민했다”고 덧붙였다. “미디어에서 그리는 엄마나 통념상의 모범적 엄마가 오히려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엄마 아닐까요. 제 주변에는 은미와 같은 엄마가 여럿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 센 수위의 장면은 이후로 나오지도 않았다”는 정 작가의 말처럼 ‘남남’은 중년 여성의 성 해방 같은 거대한 사회적 담론을 다루지 않는다. 가족은 입체적인 개인들로 구성됐기에 서로 남남이 될 수밖에 없고 되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이야기다. “얼핏 아주 끈끈해 보이는 모녀에게도 서로를 남으로 인식하는 시간은 꼭 필요합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엄마’의 인생에 갑자기 끼어든 존재 같은 것이니까요. 그래도 서로에게 죄책감은 가지지 않도록 합시다. 좀 어려워도 남남처럼 살길...”
‘남남’은 대안 가족, 성소수자 등 사회의 이른바 '정상성'에서 벗어난 인물을 자연스럽게 비추며 이들을 '별종'이 아닌 '주변인'의 자리에 놓았다. ‘남남’ 속의 그런 인물들이 "가끔 뭐 하고 사는지 궁금해지는 친구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정 작가의 바람은 실현됐다. 단행본 완결로 진정한 마지막 장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아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 작가는 “‘남남’은 끝났어도 진희와 은미가 어딘가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상상하며 독자님들도 즐겁게 같이 살아가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연락하고 싶어질 때면 “(책을)한 번씩 다시 꺼내보시라”는 당부도 덧붙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