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 국방부 차관이 일본과의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 필요성을 언급했다. 정부 고위당국자가 민감한 ACSA 문제를 공식 자리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 건 사실상 처음이다. 자위대와의 교류 확대를 비롯해 한일 군사협력이 정점을 찍는 상황이지만 자칫 '과속'으로 비칠 경우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 같은 우려를 의식한 듯 김 차관은 불과 3시간 뒤 “(ACSA 체결에 대한) 정부 차원의 검토는 없다”고 선을 그으며 입장을 바꿨다.
김 차관은 27일 오전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추진돼 온 ACSA 체결에 동의하느냐”는 조국 조국혁신당 의원 질의에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조 의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 ACSA 체결을 추진했던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의 과거 칼럼에 실린 주장을 인용해 김 차관에게 질의했는데, 이에 대해 김 차관은 “현재 한미일 군사협력 및 유사시 대북억제력을 확고하게 하고 우리 대비태세를 강화하는 차원”이라며 ACSA 체결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정부는 일본과 2012년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체결하려다 '밀실 추진' 비판이 고조돼 무산된 전례가 있다. 당시 ACSA도 함께 검토했지만 반일 감정과 반대여론이 거세 엄두를 내지 못했다. 4년 뒤 우여곡절 끝에 GSOMIA에 양국이 서명한 반면, ACSA는 여전히 뒷전으로 밀려 있다. GSOMIA는 군사정보, ACSA는 탄약, 식량, 연료 등 군수물자를 일본과 주고받는 협정이다. 두 협정을 동시에 체결해 운영해야 유사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ACSA는 실제 병력과 장비가 움직인다는 점에서 정서적 거부감이 GSOMIA에 비해 훨씬 크다. 한일 군사협력의 '끝판왕'으로 불리며 언젠가는 양국이 체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지만, 현재로선 자칫 반일 여론을 부추겨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이에 김 차관은 오후 회의가 속개되자 입장을 바꿨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ACSA 체결 추진에 대해 다시 묻자 “(ACSA 체결을) 정부 차원에선 동의하지 않고,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물러섰다. 앞서 발언을 뒤집은 셈이다. 김 차관은 ‘이를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과 논의했던 것인가’라는 질문엔 “(논의가) 전혀 없었다”라며 “(앞으로도 관련 고려가) 없는 게 국방부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김 차관은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의 개입을 기정사실화해야 한다'는 김 차장의 과거 발언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본의 교전권 행사와 관련한 질문에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며 의견 표명을 보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