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포 의도' 있어야만 불법?... 딥페이크 음란물, 해외선 어떻게 처벌하나

입력
2024.08.27 19:00
호주, 성착취 불법 합성물 처벌 근거 마련
영국, 딥페이크 음란물 만들기만 해도 처벌
미국, 피해자 구제 '디피언스법' 상원 통과

"성착취 불법 합성물은 무척 해로운 형태의 학대다. 여성·소녀 대상이 압도적으로 많고, 유해한 성별 고정 관념을 지속시키며 젠더 기반 폭력을 강화한다."

올해 6월 '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성착취물 처벌'을 골자로 한 형법 개정안을 발표한 마크 드레이퍼스 호주 법무장관의 성명이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사용해 음란물을 제작·공유하는 행위를 단속하겠다는 취지였다. 공교롭게도 성명 공개 직후, 호주에선 10대 남학생이 여학생 50여 명의 딥페이크 음란물을 만들어 유포한 사건이 일어났다. 법안은 사회적 공분에 힘입어 지난 21일(현지시간) 의회를 통과했다.

최근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지인 능욕' 텔레그램방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게다가 피해 사례는 전국 중고교·대학 등에서 속속 파악되는 중이다. 딥페이크 성범죄의 전 세계적 증가 추세 속에 각국은 '제작자 처벌 강화'와 '피해자 구제'를 위한 입법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①만들기만 해도 처벌 ②피해자 보호 우선

영국은 '딥페이크 음란물 제작' 자체의 처벌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4월 영국 법무부는 당사자 동의 없이 딥페이크 음란물을 만든 사람을 입건해 '무제한 벌금형'을 선고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공유 의도'가 없었다 해도 제작자는 형사 처벌된다는 게 핵심이다. 보수당 집권 시절 발의됐지만, 현재 집권 중인 노동당의 요구 사항이었던 만큼 입법화에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시행된 '온라인안전법'에 따라 '딥페이크 음란물 공유'는 이미 처벌 대상이다.

미국에서는 딥페이크 범죄 피해자 민사 구제책인 '디피언스법'이 지난달 상원을 통과했다. 불법 딥페이크 음란물을 제작·소지하거나, 이를 알고도 수신한 사람을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다. 연방 하원에서 같은 법안을 발의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은 해당 법안의 상원 가결 직후 성명을 내고 "딥페이크 포르노 생존자를 위한 첫 연방 차원의 보호"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국, 'n번방' 계기로 딥페이크 입법 빨랐지만...

사실 한국은 딥페이크 음란물 대응에 한발짝 먼저 나섰던 나라다. 2019년 발생한 'n번방 사건'으로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일찌감치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듬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허위영상물' 조항을 신설, 이를 성범죄로 규정하고 처벌 근거도 마련했다.

다만 '디테일'에 맹점이 있었다. 현행법은 딥페이크 불법 음란물을 '반포 목적'에 제작된 것으로만 규정하고 있다. 재판에 넘겨져도 '유포할 의도가 없었다'는 이유로 처벌을 면하거나, 가벼운 벌금형에 그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은 이 때문이다. 불법 촬영과 달리 소지·구입·저장 또는 시청 행위만으로는 처벌받지 않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은 지난해 발간 자료에서 "딥페이크 음란물은 민사상 관련 조항이 없어 일반 불법 행위로만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혜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