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가사관리사 숙소, 고시원 크기"… 인권침해 논란에 서울시 "좁지만 쾌적"

입력
2024.08.27 14:00
역삼역 인근 1.45~1.96평 규모
"노예 부리나, 나라 망신" 우려
수차례 사전 점검 마친 서울시
"시세보다 싸고 쌀도 제공한다"

이달 초 입국한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생활 중인 공동숙소 면적이 고시원 수준으로 너무 좁아 "인권 침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시는 면적이 좁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시설이 쾌적하고, 시세 대비 월세가 저렴하다"고 해명했다.

지난 6일 입국한 가사관리사 100명은 다음 달 2일까지 돌봄 및 가사관리 직무교육 등을 받은 뒤 3일부터 돌봄 서비스를 신청한 150여 개 가정에서 일하게 된다. 이들은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끝나는 내년 2월까지 서울 지하철 역삼역에서 도보 5분 거리인 공동 숙소에서 머문다.

가사관리사들이 지내는 숙소는 1인실(4.8㎡) 또는 2인실(6.5㎡)이다. 평수로 환산 때 각각 1.45, 1.96평에 해당한다. 근로기준법상 기숙사 면적의 최소 기준(1인당 2.5㎡)보다는 넓지만, 국토교통부가 정한 1인 가구 최저주거기준(14㎡)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앞서 서울시는 2022년 7월부터 새로 짓거나 증축하는 고시원에 대해 방 한 칸당 전용면적을 7㎡ 이상 확보하고, 창문을 의무 설치하도록 건축 조례를 개정했다. 다중생활시설 거주환경을 최소한으로라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가사관리사 숙소 면적은 이보다 좁은 셈이다.

이달 초 언론에 배포된 서울시 자료를 보면 가사관리사 숙소는 전형적인 '고시텔' 형태다. 방 내부에 침대와 책상, 냉장고, 에어컨 등이 있고 샤워가 가능한 화장실도 마련돼 있는 구조다. 주방은 별도의 공용공간에 있다.

돌봄 가정 접근성 고려 강남에 위치

가사관리사 숙소 실태가 공개되자 온라인에서는 시범사업을 관리 감독할 의무가 있는 정부와 서울시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가사관리사 입국 날부터 커뮤니티에서 누리꾼들은 숙소 면적을 두고 "너무 비윤리적이다. 천민자본주의 그 자체다" "노예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나라 망신이다" "외국인 인권은 인권도 아닌가" 등 격한 반응을 보였다. 내국인의 필요에 따라 필리핀 사람들이 한국에 온 만큼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는 필요하다는 취지로 요약됐다.

서울시도 숙소 면적이 좁다는 데 동의했다. 다만 강남 지역 특성상 월세 대비 면적이 좁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숙소 위치가 역삼동으로 선정된 이유는 돌봄 서비스 수요 가정과의 접근성 때문이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일반 아파트 기준으로 보면 좁지만,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에서 일하는 가사관리사 숙소 면적과 비교하면 엄청 넓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공동숙소의 월세 시세는 원래 60만 원이 넘었는데 시범사업 때 특별히 50만 원 미만으로 운영되고 있다"고도 했다.

실제 숙소 내부는 깔끔한 분위기

숙소 내부 환경은 비교적 쾌적하다고 한다. 공동숙소는 가사관리사들이 입주하기 전 리모델링을 거쳐 내부를 깔끔하게 정비했다. 서울시는 사전에 숙소를 네 차례 방문하는 등 거주자 불편이 없도록 점검했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쌀이나 라면, 시리얼 등도 거주자가 원하는 만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가사관리사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실제 숙소 내부 사진을 보면 방은 전반적으로 하얀색 톤으로 꾸며져 있었다. 벽지와 가구 등이 모두 새것처럼 정갈했다. 사진 속 거주자는 밝은 표정이었다. 다만 책상과 침대 사이에 있는 의자에 사람이 앉으면 통행이 불가능할 만큼 면적은 좁아 보였다.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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