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빈곤퇴치를 위한 12개국 동시 새마을 시범마을 조성사업은 국제개발 원칙에도 딱 맞는 협력모델입니다."
지난달 29일 우리나라 공적개발원조(ODA) 역사상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장원삼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사장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올해부터 2033년까지 10년간 4,000억 원을 투자해 전 세계 12개국에 2,000개 안팎의 새마을 시범마을을 조성하는 협약식을 체결한 것이다. ODA 사업 기관 간 공동프로젝트도 유례를 찾기 힘들지만 아프리카와 아시아 개발도상국 12개국마다 100~200개 시범마을을 동시에 조성하겠다는 발상은 전 세계 80년 ODA 역사에서도 독보적이다.
이 프로젝트의 산파가 무상원조 대표 기관인 코이카의 문상원(50) 사업전략기획실장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얀마 농촌공동체 개발사업'을 위해 3년간 현지에 머물며 110개의 새마을 시범마을을 성공시킨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미얀마 전 국가고문인 아웅산 수치 여사의 요청대로 2020년까지 100개의 새마을 시범마을을 조성했더니 자발적으로 10개 마을이 더 참여했다"며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지만 지금도 페이스북을 통해 현지 새마을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있다"며 흐뭇해했다. 물고기를 준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방법을 전수한 덕분이다.
미얀마에서의 대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문 실장은 올 초 새마을 시범마을을 전 세계에 동시에 조성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장 이사장은 흔쾌히 제안을 승인하며 '행안부·경북도와 공동으로 추진하라'는 숙제도 냈다. 장 이사장이 스리랑카 대사 시절 "한국에서는 행안부와 경북도의 새마을이 다른 거냐"는 현지 관리의 지적을 받아, 대한민국 ODA 통합브랜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설명이었다.
코이카의 제안에 행안부와 경북도는 잠시 주춤했지만 개별 지원사업의 한계에 공감하던 터라 곧장 협약식으로 이어졌다. 이 지사도 문 실장의 설명에 공감하며 협약의 걸림돌 제거에 팔을 걷어붙였다.
세 기관은 앞으로 10년간 12개국에서 새마을리더를 배출할 새마을전문대학원 운영과 새마을 연수사업, 국제포럼, 시범마을 조성·평가 등을 수행한다. 개도국에서는 이미 새마을이 대한민국을 ODA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탈바꿈시킨 마법의 단어로 각인돼, 프로그램 영문 이름(농촌공동체 개발 프로그램, Saemaul Poverty Zero Program)에도 그대로 사용했다.
"전 세계 빈곤계층의 80%가 개도국 농촌에 있기 때문에 반만년 가난을 극복한 우리나라 새마을운동에 대한 러브콜이 끊이지 않아요. 근면·자조·협동 정신과 경쟁 및 보상, 마을과 지역·중앙정부간 조율, 다양한 이해관계자 참여 등 새마을의 원리와 미래 디지털 요소를 잘 조화시켜 주민주도 마을개발사업을 꽃피울 겁니다."
그는 "인도네시아에만 마을이 20만 개가 넘는데 200개 시범마을을 조성한다고 자만할 수 없다"며 "개도국 정부가 시범마을 모델의 성공사례를 확인한 후 모든 마을로 확대해 국가적인 빈곤을 해소토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덧붙였다.
코이카는 10년 사업이 끝나면 공신력 있는 기관에 12개국 새마을 시범마을의 성적표를 매기게 할 계획이다. 코이카 입사 21년 차인 문 실장은 "새마을운동의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는 단순히 경제적 빈곤뿐만 아니라 문맹과 질병 등 모든 인간생활의 결핍에서 탈피하자는 것"이라며 "지구촌이 모두 잘 살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