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찰차만 보면 도주하니 아무래도 애를 먹죠."
서울 동대문경찰서 김지호 경사는 교통안전계 근무만 올해로 9년째인 베테랑이다. 어디서, 어떻게 차량을 단속해야 하는지 훤히 꿰뚫고 있지만 전동킥보드는 예외다. 역주행, 중앙선 침범 등을 목격해도 순찰차가 접근하면 차량 진입이 어려운 골목길로 도주하기 일쑤여서다. 김 경사는 "단속 횟수를 지난해 대비 2~3배 늘리고, 경찰 로고가 없는 암행 순찰차를 적극 활용한 후에야 전동 킥보드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오토바이, 승용차 등을 단속할 때보다 훨씬 많은 경찰력을 투입한 뒤에야 전동킥보드 단속이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전동킥보드는 원동기 장치 자전거 중 최고시속 25㎞ 미만, 총중량 30㎏ 미만의 '개인형 이동장치(PM)'를 통칭하는 말이다. 짧은 거리를 오갈 때 편리한 친환경 이동수단이라 국내에 2018년쯤 도입된 뒤 이용자가 급속도로 늘었다. 그러나 '도로 위 무법자'란 오명도 붙었다. 보호 장구 미착용부터 음주운전, 뺑소니 등이 빈번하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PM에도 번호판을 부착해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PM 사고 건수는 증가 추세다. 28일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9년 447건에서 지난해 2,389건으로 최근 5년 새 다섯 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사망자 수도 8명에서 24명으로 껑충 뛰었다.
이용자 증가에 따른 현상일 수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번호판 부착 의무가 없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장경일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는 "다른 이동 수단을 사용할 때는 모범 운전을 하던 사람도 킥보드처럼 번호판 없는 기기를 타면 법규를 위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 PM엔 자동차와 같은 번호판이 없다. 또 이륜차 중에서도 △방향 조절 가능한 핸들이 없거나 △전조등과 같은 등화장치를 설치할 수 없는 구조 △모든 바퀴를 독립적으로 제동하는 장치가 없는 경우 번호판을 안 달아도 된다. 최근 음주운전 논란을 일으킨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슈가가 탄 전동스쿠터 역시 번호판 부착 의무가 없는 기종으로 알려졌다.
전동킥보드 뺑소니 범죄도 늘고 있다. 2022년 9월, 서울 영등포구 신도림역 인근에서 한 남성이 전동킥보드로 보행자를 치고 달아난 뒤 3일 만에 검거됐는데, 당시 피해자 가족은 "목뼈에 금이 가고 쇄골이 골절돼 하반신 마비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같은 해 5월 경기 평택에서는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은 채 술에 취해 전동킥보드를 운전하던 A씨가 음주단속 경찰관을 치고 도주하기도 했다.
반면 검거는 쉽지 않다. 서울 성북경찰서 A경감은 "번호판 부착 차량은 번호 조회만 하면 끝난다"며 "전동킥보드를 추적하려면 폐쇄회로(CC)TV로 동선을 추적하고, 신원 확인을 위해 어느 편의점에서 카드를 썼는지 확인하는 데만 며칠이 걸린다"고 호소했다. 교통 범죄를 수사하는 B경정 역시 "번호판 있는 오토바이는 국민신문고 등 공익 신고가 많이 들어오는데 전동킥보드 등은 제보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자동차관리법을 개정해 번호판 부착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전재호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일본처럼 전동킥보드에 번호판을 부착한 해외 사례가 이미 있다"며 "또 자동차처럼 보험 가입도 가능하게 해 장기적으로 하나의 교통수단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