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밤(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州) 시카고 유나이티드센터. 민주당 전당대회 나흘째 마지막 연사는 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었다. 후보 수락 연설 시작 뒤 20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해리스가 말했다. “미국, 우리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2만여 관중석을 꽉 채운 당원들이 그의 다짐을 구호처럼 연호했다.
전대 첫날 깜짝 등장에 이어 사흘 만에 재등장한 해리스 부통령은 민주당 상징색인 파란색 계열의 진한 남색 바지 정장을 갖춰 입고 '투사'처럼 등장했다. 그는 연설 내내 11월 대선에서 맞붙을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과거로 규정하며 몰아세웠다. “가드레일 없는 트럼프를 상상해 보라”며 “우리나라(미국)를 과거로 돌리는” 게 트럼프 전 대통령 목표라고 저격했다.
트럼프 1기 시절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청중들의 이구동성 화답에 해리스 부통령은 미래 청사진을 꺼냈다. ‘기회 경제’라는 표현이었다. “모든 이가 경쟁하고 성공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또 일자리를 만들고 비용을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주택 부족을 해결하고 사회보장·의료보험을 지키겠다고도 했다. 대선 상황과 관련해 그는 “지금 미국은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내세운 목표는 중산층 보호·강화다. 자메이카인 아버지와 인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해리스 부통령은 연설 들머리에 유년기 이야기로 자신의 중산층 배경을 부각하려 했다.
임신중지(낙태) 등 생식의 자유는 해리스 부통령이 가장 공들여 온 의제 중 하나다. 그는 “트럼프는 (여성에게서) 생식 자유를 빼앗으려 연방대법관들을 직접 골랐다”고 말했다. 1기 행정부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법관 3명을 지명하며 확실한 보수 우위로 재편된 연방대법원은 2022년 6월 임신중지를 헌법상 권리로 인정하던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폐기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트럼프는 피임과 임신중지약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전국적으로 임신중지를 금지할 것”이라며 “그들은 정신이 나갔다”고 일갈했다. 이에 민주당원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검사 출신인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는 진지하지 않은(unserious) 인물이지만, 트럼프를 백악관에 다시 앉히는 데 따르는 결과는 극도로 심각하다(serious)”고 저격하기도 했다. 2020년 대선 결과 불복, 극렬 지지자들의 2021년 1·6 워싱턴 국회의사당 폭동 유도, ‘성추문 입막음 돈’ 지급 사건의 유죄 평결 등 트럼프 전 대통령 범죄 혐의를 지적한 것이다.
연설을 관통한 화두는 통합 및 자유였다. 연설 말미 미국인을 상대로 “서로, 그리고 세상에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대표하는 게 무엇인지 보여 주라”며 기회, 연민, 존엄, 공정, 끝없는 가능성과 함께 맨 먼저 거론한 가치가 자유였다. 아울러 “모든 미국인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직전 연설로 해리스 부통령을 소개한 로이 쿠퍼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는 “우리는 엄청난 투사를 보유하고 있다”며 “(우리는) 당신을 위해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날 결혼 10주년을 맞은 해리스 부통령은 남편 더그 엠호프에게 감사를 표시하며 연설을 시작했다. 엠호프는 해리스 부통령을 ‘즐거운 전사’라고 표현했다. 이날 전대 무대에 오른 의붓딸 엘라 엠호프(25)는 사춘기 시절 자신을 보듬어 준 ‘마멀라(엄마 카멀라)’에게 감사와 애정을 표했다.
해리스 부통령의 이날 수락 연설 시간은 38분이었다. 40분이 넘었던 전대 첫날 바이든 대통령 연설보다 짧았고, 지난달 공화당 전당대회 때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 역대 최장 후보 수락 연설 시간 93분과 비교하면 절반도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