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고 8층에서 뛴 남녀 못 구한 '에어매트'… 소방청 뒤늦게 "매뉴얼 마련"

입력
2024.08.23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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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매트 위로 뛰어내린 남녀 2명 끝내 사망해
"잘못 설치" 지적에, "정상적으로 했다" 해명
경사로 설치 등 뒤집힌 원인 총체적 점검 필요



경기 부천 호텔 화재 현장에서 탈출을 위해 에어매트 위로 뛰어내린 남녀 2명이 모두 숨진 것과 관련해 에어매트가 제 기능을 못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23일 소방당국과 목격자 등 취재를 종합하면 전날 저녁 화재 신고를 받은 구조대원들은 호텔에 도착한 지 5분 만에 에어매트를 호텔 주차장 출입구 근처에 깔았다. 807호(4층이 없어 실제로는 7층)에 머무르던 30대 남성과 40대 여성이 미처 객실을 빠져나오지 못한 채 창문으로 구조 요청을 했기 때문이다. 호텔 건너편 오피스텔에 사는 정모(44)씨는 "연기가 나서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니 (807호에서) '살려달라'고 소리쳤고 곧이어 매트가 설치됐다"고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가장자리로 낙하... 충격 흡수 왜 못 했나

에어매트 설치 7분 만에 먼저 여성이 뛰어내렸다. 이 여성은 에어매트 가운데가 아닌 가장자리로 떨어졌고 에어매트가 뒤집혔다. 이후 곧바로 뛰어내린 남성은 에어매트가 뒤집히며 생긴 빈 공간인 바깥쪽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심폐소생술(CPR)을 받았으나 결국 숨졌다.

처음부터 매트를 잘못 설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지만 소방 당국은 부인했다. 조선호 경기소방재난본부장은 "정상 설치됐으나 (객실) 창문이 워낙 작은 탓에 가운데로 낙하를 했어야 했는데 모서리 부분으로 떨어진 것 같다"면서도 "왜 뒤집혔는지에 대해선 전문가 자문을 받겠다"고 설명했다. 에어매트 모서리를 잡거나 고정시키지 않은 점도 의문이다. 이날 현장을 방문해 상황 보고를 받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조 본부장은 "인원이 부족해 딱 잡아주고 그러지는 못 했다"고 답했다. 에어매트 운용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되지만 다른 소방 전문가들은 다른 의견을 냈다. 한 소방 관계자는 "모서리를 잡고 있다가 구조대상자가 잘못 떨어져 소방대원이 다칠 수도 있다"며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하니 반드시 고정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에어매트 성능엔 문제가 없었던 걸까. 2006년 지급돼 사용 가능기한인 7년을 훨씬 넘긴 제품이란 지적에 소방당국은 에어매트는 소모품이 아니라 심의를 받아 재사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사용된 에어매트는 10층 높이에서 뛰어내려도 살 수 있게 제작된 장비로 가로 7.5m 세로 4.5m 높이 3m다. 공기가 주입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무게는 126kg이다. 다른 소방 관계자는 "8층에서 뛰었으니 충격을 흡수해야 하는데 뒤집어져버린 건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결국 에어매트의 공기량이나 경사가 있는 호텔 주차장 입구라는 설치 장소 등이 적절했는지 등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다른 구조 설비 상황 여의치 않아

완강기나 사다리차 등 다른 수단을 먼저 활용해야 했다는 의견도 있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에어매트는 원래 뛰어드는 게 아니라 추락에 대비해 펼치는 것"이라면서 "1차적으로 써야 할 완강기 대신 에어매트를 활용한 건 의아하다"고 짚었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행정학과 교수 역시 "8~10층 높이에선 에어매트를 통해 안전을 확보하기 어려우니 사다리차 등을 이용해 구조 활동을 펼쳤어야 한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현장 상황은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부천소방서 관계자는 "내부가 연기로 가득해 피해자들이 완강기 위치를 파악하진 못한 것 같다"면서 "도로 폭도 확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호텔 주변에 지정 주차구역과 불법주차 차량들이 있어 7.5m 폭의 고가 사다리차 배치가 어려웠단 얘기다.

뒤늦게 소방청은 에어매트 '통합 매뉴얼'을 만든단 방침이다. 아울러 대국민 안전교육에 에어매트 사용 방법에 관한 내용도 보강하기로 했다.

최현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