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 화성시 배터리 공장 화재 참사는 과실에 의한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확인됐다. 이번 화재는 지연된 납품 일정을 맞추기 위해 숙련되지 않은 인원을 충분한 교육 없이 대거 투입하는 등 무리한 작업을 추진하다 피해를 키운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남부경찰청 아리셀 화재사고 수사본부와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등은 23일 수사결과 합동 브리핑을 열고 아리셀 박순관 대표와 박 대표의 아들인 박중언 총괄본부장, 안전보건관리자, 인력공급업체 한신다이아 대표 등 4명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상이다. 박 대표에게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도 적용됐다. 이번 사고로 현재까지 경찰에 입건된 인원은 모두 18명이다.
경찰 조사결과 아리셀은 2021년부터 국방부에 일차전지를 납품해 오던 중 올해 4월 납품을 위한 품질검사에서 처음으로 미달 판정을 받았다. 앞서 아리셀은 최초 납품부터 품질검사용 전지를 별도로 제작한 뒤 시료를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데이터를 조작해 국방기술품질원에 납품해 왔는데 무작위 검사에서 적발된 것이다. 경찰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추가 수사한다는 계획이다.
아리셀은 규격 미달 판정을 받아 4월분 8만3,000여 개를 재생산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고, 6월분(6만9,000여 개)의 납기일도 다가오자 ‘일평균 2배 수준인 하루 5,000개 생산’이라는 무리한 목표를 세웠다.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인력공급업체인 한신다이아(메이셀 전신)로부터 숙련되지 않은 노동자 53명을 공급받아 충분한 교육 없이 제조공정에 투입했다.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 업무는 파견법상 32개 파견근로 허용 업종에 포함되지 않아 불법이다.
이 같은 무리한 공정으로 3~4월 2.2%였던 평균 불량률은 5월 들어 3.3%, 6월 6.5%로 치솟았고, 기존에 나오지 않던 케이스 찌그러짐 등 불량 케이스도 발생했다. 하지만 아리셀은 찌그러진 케이스를 망치로 쳐 억지로 결합하거나 구멍 난 케이스를 재용접하는 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생산을 이어갔다. 아리셀은 이 과정에서 전지에 발열이 생기는 것을 인지해 정상 전지와 분리했지만 6월분 납기일정에 쫓기자 위험성을 무시한 채 발열전지도 납품 대상에 포함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화재 이틀 전인 같은 달 22일 전해액 주입이 완료된 전지 1개가 폭발하는 사고가 났지만 아리셀은 생산라인을 중단하지 않은 채 가동했다.
비상구 설치 등 대피경로 확보에도 부실이 드러났다. 불이 난 3동 건물의 경우 2층에서 3개의 출입문을 통과해야 비상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항상 열릴 수 있어야 하지만 보안카드가 있어야만 열리는 구조여서 피해를 키운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비숙련공을 대거 투입하고 이상 제품을 발견하고도 검수 없이 공정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등 부실이 다수 발견됐다”며 “이상 제품에서 발생한 분리막 손상 등으로 인한 폭발로 인해 화재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6월 24일 오전 10시 31분쯤 경기 화성시 서신면 아리셀 공장 3동 2층에서 화재가 발생, 23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6명이 경상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