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광화문 광장을 '국가상징공간'으로 조성하겠다고 한다. 시민의견 수렴 결과 찬성이 59%로, 반대 40%보다 많다는 것이다. 의견 수렴 기간이 한 달, 참여한 사람이 고작 522명이었다는 사실도 개의치 않는다. 수백억 원의 세금이 들어가고 한 번 만들면 수십 년간 자리를 지킬 조형물이다. 졸속 결정할 일이 아닌데 다음 달 설계 공모를 시작해 내년 9월까지 준공하겠단다. 광화문이 또 공사판으로 바뀔 모양이다.
설계 공모 역시 요식행위에 가깝다. 대형 태극기, 그리고 6·25 참전 용사를 기리는 '꺼지지 않는 불꽃' 등이 거론된다. 이미 용산 전쟁기념관이 맡고 있는 역할이니 광화문에 중복 설치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서울시는 파리의 개선문이나 워싱턴의 모뉴먼트 같은 상징물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겠지만, 그렇다면 더욱 안 된다. 개선문은 나폴레옹을 추앙하는 파리 시민의 뜻에 따라 의회 주도로 건립했다. 모뉴먼트 역시 조지 워싱턴을 기념하는 민간단체가 건립했다. 국가상징물은 시민의 자발적 의지로 만드는 것이다. 관이 주도할 일이 아니다.
서울시의 광화문 광장 성역화는 천안문 광장을 떠올리게 한다. 천안문 광장은 중국의 국가상징공간이다. '천안문' 현판이 걸려 있어야 할 자리는 중국의 국장(國章)이 차지하고 있다. 그 아래에 거대한 마오쩌둥 초상이 걸려 있고, 왼쪽엔 '중화인민공화국 만세', 오른쪽엔 '세계인민대단결 만세'라고 썼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 나오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의 번안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공산주의를 이념으로 삼는 국가라는 것이다. 광장 앞에는 30m 높이의 국기게양대를 설치하고 매일 국기게양식을 거행한다.
중국 정부가 국가상징공간으로 조성한 이유는 중화 문명의 위대함과 공산주의 이념의 건재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세계가 천안문 광장을 보고 떠올리는 건 그게 아니다. 한때 그곳에 가득했던 민주화를 향한 열망, 지금은 흔적 없이 지워진 그날의 참상이다. 국가의 상징은 시민의 의지로 만드는 것이라는 또 다른 증거다.
뜬금없이 국가상징공간을 만들겠다는 의도는 짐작이 간다. 광화문 광장을 천안문 광장처럼 만들고 싶은 것이리라. 광화문 정중앙에 '국부' 이승만 사진을 걸고, 왼쪽에 '자유대한민국 만세', 오른쪽에 '자유민주주의 만세'라는 표어를 원할 것이다. 그 앞의 국기게양대에서 매일 국기게양식도 거행할 것이다. 이는 역사의 퇴행이다. 광화문 광장을 내버려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