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도 군대 갔지만 올림픽 메달 따면 면제... 병역 특례 손본다[문지방]

입력
2024.08.25 13:00
제도 개선 TF 발족 앞둔 국방부·병무청
'전원 입대' BTS 계기 "제도 개선 필요성"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삐약이' 신유빈(20·대한항공)은 2024 파리 올림픽 무대에서 별명을 하나 더 얻었습니다. 탁구 혼합복식에서 동메달을 합작한 임종훈(27·한국거래소)이 현역 입대 대신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 가능해지면서, 스포츠팬들이 ‘합법적 병역 브로커’라는 별명을 붙여줬기 때문입니다. 임종훈이 이른바 ‘병역 혜택’ 대상이 되는데 신유빈의 공이 절대적이었다는 얘기죠.

1997년생으로 어느덧 20대 후반이 된 임종훈으로서는 이번 올림픽 무대가 사실상 병역 특례 대상이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현행 병역법에 따르면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가 병역 특례 대상이 되는데, 임종훈은 지난해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남자복식 은메달, 혼합복식 동메달로 특례 대상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파리올림픽 직후 입대하기로 결정한 상태였죠.

임종훈과 호흡한 신유빈 외에도 사격 공기소총 박하준(24·KT)과 혼성 종목서 짝을 이뤄 은메달을 따낸 금지현(24·경기도청)도 이른바 ‘합법적 병역 브로커’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임종훈과 박하준, 그리고 메달을 따낸 수영 김우민(23·강원도청) 배드민턴 김원호(25·삼성생명) 펜싱 도경동(25·국군체육부대) 등도 훈련소에서 3~4주간 기초군사훈련만 받은 뒤 해당 분야 특기를 활용해 544시간의 봉사활동을 하고 나면 병역 의무를 마칩니다.

"손볼 때가 됐다"… 다시 TF 꾸리는 정부



그러나 병역 미필 남자 선수들에게 ‘메달은 곧 전역’으로 여겨지는 올림픽 무대는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국방부와 병무청 등 유관 기관들이 하반기에 예술·체육요원에 대한 제도 개선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2028 로스앤젤레스 대회에서는 지금과 같은 병역 혜택도, 이에 따른 합법적 병역 브로커라는 수식어는 더 이상 쓰이지 않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정부 관계자는 23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예술·체육요원에 대한 특례 제도 개선책에 대한)결론을 올해 안에 낼 방침으로 안다"며 "논의 시기가 정해지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김종철 병무청장이 지난 5월 취임식에서 제도 개선을 언급한 점을 비춰봤을 때, 강도 높은 개선안이 빠르게 나올 수도 있다는 추론도 가능합니다. 특례 제도 개선은 크게 ①병역 이행 공정성 확보 ②병역 자원 감소가 요인으로 꼽히는데, 정부는 조만간 국방부와 병무청,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련부서들과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올해 안에 새로운 제도를 내놓겠다는 구상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사실 예술·체육요원에 대한 병역 특례 제도 재검토 필요성은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스포츠로 국위 선양을 해 온 선수들의 공로를 보상하자며 1973년 도입된 이 법률이 공정성, 형평성이 요구되는 지금의 시대상과 맞지 않다는 주장에 힘이 실려왔기 때문입니다. 같은 성과에도 여성 선수에 비해 혜택이 더 큰 점, 국위선양의 기준이 왜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국제 체육행사여야만 하는지에 대한 논란도 많았죠.

특히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남자 축구 금메달로 병역 특례를 받은 축구선수 장현수(33·알 가라파)가 544시간의 봉사활동 증빙서류를 허위로 제출한 사실이 2018년 밝혀지면서 제도 관리의 허점도 드러났습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4강까지 단 1분도 출전하지 않았던 남자 축구대표팀 김기희(36·울산)가 일본과 3, 4위전에서 2-0으로 앞선 후반 막판 투입돼 약 4분 만 출전, 병역 특례 자격을 얻으며 ‘4분 전역’ 비아냥 대상이 되는 등 크고 작은 사건들도 이어졌습니다. 같은 무대에서 병역 특례 조건을 충족한 박주영(39·울산)도 앞서 모나코 영주권을 획득해 병역을 미룬 사실이 드러나 비판의 중심에 섰고요. 야구 등 다른 구기종목의 경우 병역 미필자 위주로 대표팀을 꾸려 ‘군필’ 선수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았습니다.

“봐라, BTS도 다 다녀왔지 않느냐!”


규정의 형평성 논의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건 BTS 멤버들의 전원 입대입니다. 2021년 빌보드 뮤직 어워즈 4관왕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 아시아 무대에서 상을 휩쓴 BTS가 끝내 병역 특례 대상이 되지 못한 채 전원 입대하면서 제도 개선 논의에 다시 불을 붙였습니다. 체육계에서 제시하는 핵심 특례 유지의 근거인 ‘경력 단절 우려’에 대해 할 말이 생긴 것이죠.

그간 병역 혜택을 누려왔던 선수들의 인식 변화도 엿보입니다. 2021년 열린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당시 국군체육부대 소속이던 우상혁(28·용인시청)은 4위를 기록, 동메달을 너무 안타깝게 놓쳤지만 좌절하기보다 한국 신기록을 경신한 데 한껏 기뻐했습니다. 메달리스트도 아닌데 태극기까지 들고 뛰면서 메달 중심의 ‘스포츠 국위선양’ 시대를 넘어 자신의 성취에 만족하는 시대상을 보여주기도 했죠. 파리올림픽 사격 남자 25m 속사권총 은메달리스트 '말년 병장' 조영재(25·국군체육부대)는 전역을 며칠이라도 앞당길 수 있었지만, 메달 직후 만기 전역 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손흥민, 류현진 전성기 유지 도운 병역 특례



물론 급진적 제도 개선에 대한 신중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특례 제도가 없었다면 손흥민(32·토트넘)도 지금쯤 국군체육부대 소속으로 K리그(김천 상무)에서 뛰었을 것이며,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뛴 박찬호(51) 추신수(42·SSG) 류현진(37·한화)도 '서른 즈음에' 귀국해 KBO 퓨처스리그(상무)에서 실력을 뽐내야 했을 겁니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이강인(23·파리 생제르맹)과 ‘페이커’ 이상혁(28·T1)도 현역 입대 시점을 조율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겠지요.

체육계에서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이 끝날 때마다 제도 개선 논의가 나왔지만 결국 손대지 않은 덴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병제가 아닌 징병제 국가의 특수성 아래, 국군체육부대 입대 정원이 극히 제한적이고, 전체 병역 특례 인원 가운데 체육요원 비중이 산업기능요원이나 전문연구요원, 공중보건의사, 공익법무관 등에 비해 매우 적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습니다.

이달 초 조원씨앤아이가 스트레이트뉴스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2,002명 대상)에 따르면 '국위선양을 이유로 예술, 체육인 등에 부여됐던 병역특례제도를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일정 메달을 딴 선수에게만 혜택을 주는 개선 방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찬성 입장은 67.7%로 조사됐습니다. 10명 중 7명이 찬성 의사를 밝힌 셈이죠. '매우 찬성한다'는 25.7%, '대체로 찬성한다'는 42.0%였고, '매우 반대한다'는 9.2%, '대체로 반대한다'는 12.9%로 나타났습니다. 개선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에리사 전 의원은 “병역 특례는 선수뿐 아니라 다른 전문인력들에게도 생존권이 걸린 문제로, 그리 손쉽게 폐지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조언합니다. 이 전 의원은 “과거에는 육군, 해군, 공군에 체육부대가 있어 선수들이 병역 의무를 다 하면서 실력을 기를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경찰청마저 선수들을 받지 않아 설 자리가 없어졌다”며 “선수들이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방법은 없을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라고 강조합니다.

국방부와 병무청, 문체부 등 관계부처가 병역 특례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한다며 TF를 구성한 게 처음은 아닙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마친 뒤에도 TF를 구성했지만 결국 '현행 유지'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습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 다시 꾸려질 TF는 어떤 결론을 내릴까요. 선수들의 전성기 기량을 꺾지 않으면서 형평성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를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김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