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스티커와 공작의 꼬리

입력
2024.08.22 17:00
26면
서울대생 부모 부러움 살 만하지만
유전·환경적 자원 부족한 다수에겐
선택받은 소수가 누리는 '비싼' 신호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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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재학생이 중·고등학생 과외를 하면 시급으로 보통 3만~5만 원을 받는다고 한다. 또래 젊은이가 편의점에서 일하고 받는 시급은 최저임금 수준이니 1만 원이 안 된다. 갓 성인이 된 청년들이 처음 스스로 일해서 모으는 돈일 텐데 출발선이 다르다. 자녀를 서울대에 보내고 싶은 이유는 차고 넘친다.

자녀가 서울대에 다니면 부모도 덩달아 으쓱해진다. 합격은 아이가 했어도 암묵적으로는 그 공의 상당 부분이 부모에게 있을 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수한 학습 능력을 물려준 유전적 공이든, 성적을 올릴 수 있게 만들어준 환경적 공이든 부러움을 살 만하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부러움을 사면 아쉽지도 과하지도 않을까.

서울대발전재단이 배포한 ‘SNU family’ 스티커가 논란이다. 서울대 로고와 함께 ‘I’M MOM’, ‘I’M DAD’, ‘PROUD FAMILY’가 적혀 있다. 붙이고 다니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울대생 엄마와 아빠란 사실, 서울대생을 키워낸 자랑스러운 가족이란 사실을 불특정 다수에게 알릴 수 있다.

서울대 측은 구성원 가족들이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하기 위해 스티커를 배포했다고 설명했다. 성인이 된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굳이 부모까지 소속감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뭘까. 서울대는 기부금 모금에 도움이 될 걸 기대한다고 했다. 스티커와 기부의 상관관계가 궁금하다. 미국 하버드대를 벤치마킹했다는데, 스티커 말고 벤치마킹할 다른 건 없었는지도 궁금하다.

스티커가 사회적 논란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음을 서울대가 몰랐을 거라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서울대생 자녀를 배출할 만큼 능력 있는 집안이라는 점을 드러내고 싶은 일부 구성원 가족들의 심리를 학교가 나서서 부추겼다. 유전적 자원도, 환경적 자원도 부족한 부모가 다수인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 스티커는 진화심리학에 나오는 ‘값비싼 신호’일 수 있다.

자연에서 찾을 수 있는 값비싼 신호의 대표적인 예가 수컷 공작의 꼬리다. 무겁고 거추장스러운데도 화려하고 커다란 꼬리를 굳이 달고 다니는 이유는 그런 꼬리를 만들 수 있는 능력과 자원이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병약한 다른 수컷이 결코 갖지 못하는 귀한 능력과 자원을 화려한 꼬리라는 신호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학력은 아마도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인 값비싼 신호일 터다. 성적은 선천적인 유전 요소와 후천적인 환경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나타난다. 그 순서대로 앞줄 일부만 ‘선택’을 받는 대학 입시의 모습은 어쩌면 자연의 생존경쟁과 다를 바 없다. 많은 자원을 투자하고 어렵게 선택받아 얻은 서울대생, 의대생 같은 타이틀은 사회에서 값비싼 신호로 작용하게 된다.

화려한 꼬리를 가진 수컷은 건강한 암컷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값비싼 신호가 보장해주는 결과다. 값비싼 신호를 만들었는데 결과가 달리 흘러가면 어떻게 될까. 자녀를 의대생 만든 부모들은 다 큰 자녀 대신 거리로 나와 아들딸 학습권 보장하고 정원은 늘리지 말라며 피켓을 들었다.

서울대생, 의대생 되기 참 어렵다. 서울대생 부모, 의대생 부모 되기는 더 어렵다. 이런 타이틀이 값비싼 신호라는 걸 부인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그 영향력이 너무 커지다 보니 너도나도 목매기 시작했다. 그만한 타이틀 만들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부모가 안 되는 게 속 편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 서울대생, 의대생 부모보다 일터에서 숨진 청년의 부모, 장애아 받아달라 무릎 꿇는 부모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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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형 미래기술탐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