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영웅들의 영롱했던 말말말…

입력
2024.08.22 22:00
26면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를 즐겼다. 수준급 실력은 아니지만 구기종목 경기는 거의 다 선수로 뛰는 걸 좋아했고, 월드컵 축구나 올림픽, 세계육상선수권 같은 스포츠 빅 이벤트가 열리면 TV 채널을 돌려가며 밤을 새웠다.

2주 전 끝난 파리올림픽은 짜증 나는 정치 사회 뉴스와 폭염에 지친 내게 오아시스 같은 휴식처였다. 우리 선수들의 경기 후 인터뷰를 듣는 건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선수들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시의적절한 표현을 써가며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얘기했는데, 따로 말하기 연습을 했는지 의심할 정도로 훌륭했다. 몇 번 들어도 가슴이 뜨거워지고 미소를 짓게 하는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말하기 코칭을 할 때 써먹으려고 따로 적어 놓았다.

얼굴 표정이나 눈빛, 몸동작과 함께 영상으로 보아야 그 순간의 감동을 온전히 느낄 수 있지만, 우리 선수들의 인터뷰 내용 중 나를 웃고 울게 만들었던 멋진 표현을 그대로 옮겨본다.

"축구에 메시와 호나우두가 있다면 양궁에는 김우진과 앨리슨이 있다."(양궁 3관왕 김우진이 개인전 결승 슛오프에서 4.9㎜ 차이로 앨리슨을 꺾은 뒤)

"조금 지쳤지만 단체전이어서 더 정신적으로 버티려고 했다.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언니들이 옆에 있으니까 지칠 수가 없었다."(삐약이 신유빈이 보름간 14경기를 뛰고 탁구 여자 단체 동메달을 딴 뒤)

"경기 전 어머니가 꿈에 나와 함께 놀러 갔다. 일어나니 내가 울고 있었다." "유독 기구가 가벼웠다. (엄마와) 같이 들었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역도 은메달리스트 박혜정이 지난 4월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며)

"부모님만 감동시켰다. 하늘을 완전히 감동시키기에는 이 정도로 부족한 것 같다."(김민종이 유도 은메달을 딴 뒤 "메달을 땄으니 하늘을 감동시킨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그냥 어펜져스(어벤져스와 펜싱의 합성어) 시대에 살고 있다."(펜싱 2관왕 오상욱이 "우리는 지금 오상욱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동료의 말을 듣고)

"감독님은 3년 동안 가정도 돌보지 못하고 해외로 다니시면서 최선을 다해주셨다. 개인생활을 모두 포기하고 나를 열정적인 선수로 만들어주셨다."(스마일 점퍼 우상혁이 남자 높이뛰기 메달 획득 실패 후 울먹이며 한 말)

"내 인생에서 사격이 끝난 건 아니다. 다음 올림픽 때까지 끊임없이 도전할 것이다."(일론 머스크도 주목한 김예지가 주 종목 사격 25m권총에서 실수로 0점을 받으며 입상에 실패한 뒤)

"하루하루 얼마나 뛰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숨이 차도록 뛰고 또 뛰었다. 머리를 금색으로 염색한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하고 싶어서 했다. 2028 LA올림픽에서는 이 동메달을 내 머리 색깔처럼 금메달로 바꿔보겠다."(성승민이 아시아 여자선수론 처음 근대5종 메달을 딴 뒤)

"세계랭킹은 숫자에 불과하다. 나 자신만 무너지지 말자고 생각했다."(태권도 여자 57㎏급 세계 24위 김유진이 16강전부터 결승까지 세계 1~5위 중 4명을 꺾고 금메달을 딴 뒤)

"뒷일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그대로 끝나면 뭘 해도 뒤집을 수 없다. 선수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뭐든지 해야 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오혜리 태권도 코치가 서건우의 16강전 오심 판정에 항의하며 코트에 뛰어든 상황을 설명하며)



홍헌표 캔서앤서(CancerAnswer)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