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미국 대선 후보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무소속)가 행정부 기용을 조건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캠프에 합류할 뜻을 내비쳤다. 케네디 주니어는 5% 안팎의 지지를 얻어 온 제3의 대선 후보로, 그가 사퇴한다면 지지층이 겹치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호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21일(현지시간) 케네디 주니어 측 슈퍼팩(Super PAC·정치자금 기부단체) 관계자를 인용해 "그는 자신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대가로 트럼프의 행정부에서 일할 수 있도록 거래하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자리'를 약속해주면, 후보직을 사퇴하고 지지 선언을 하겠다는 뜻이다.
미국 ABC뉴스도 이날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케네디 주니어는 이번 주말까지 대선(캠페인)에서 물러나고 트럼프를 지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케네디 주니어는 ABC의 확인 요청에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케네디 주니어는 이번 미국 대선에서 유일하게 저력을 보여 온 '제3의 후보'다. 그는 민주당 계열 명문가 케네디 가문 출신 변호사로, 큰아버지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아버지는 1968년 민주당 대선 경선 중 암살된 로버트 F 케네디 전 법무장관이다. 그 역시 민주당 소속이었으나 지난해 10월 탈당 후 무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했다. 코로나19 시기 음모론을 펴면서 백신 반대 운동을 이끈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한때 10% 안팎의 지지를 얻으면서 이번 대선의 변수로 떠올랐다. 조 바이든 대통령·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결 구도에서 둘 모두에게 회의적인 유권자들의 표심을 흡수한 덕택이었다. 그러나 민주당 대선 주자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으로 교체되면서 지지율이 절반가량 떨어지는 등 존재감을 잃었다.
이에 케네디는 '출구 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15일 케네디 주니어가 해리스 부통령에게도 지지 선언의 대가로 행정부 직책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해리스 부통령은 이를 묵살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케네디 주니어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 니콜 섀너핸도 전날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대선 출마를 접고 트럼프에게 힘을 싣는 것"을 선택지로 언급했다. 이 소식을 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CNN방송 인터뷰에서 "나는 (케네디 주니어에게) 확실히 열려 있을 것"이라면서, 행정부 기용 가능성 질문에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
케네디 주니어의 대선 하차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호재가 될 수 있다. 지난 9~13일 WP·ABC·여론조사기관 입소스의 조사에 따르면 케네디 주니어의 지지율은 5%다. 현재 해리스 부통령에게 근소하게 밀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겐 절실한 수치다. 케네디 주니어는 민주당 출신이지만 '백신 음모론자'로 공화당 성향과 거리가 가깝다. 게다가 최근 이탈한 그의 지지자는 급부상한 해리스 부통령에게로 갈아탄 경우가 많다고 WP 칼럼니스트 필립 범프는 분석했다. 이렇게 걸러지고 남은 지지자들은 다수가 공화당 성향으로 유추된다는 것이다.
다만 케네디 주니어가 사퇴한다고 해서 5% 안팎의 지지율을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고스란히 흡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범프는 "이번 조사에 따르면 케네디 주니어 지지자가 트럼프를 매우 비호의적으로 볼 가능성도 41%나 됐다"며 "그들 중 다수가 할 수 있는 일은 (투표하지 않고) 집에 머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케네디 주니어는 23일 애리조나주(州)에서 연설할 예정인데, 이때 "역사적인 현재의 순간과 미래의 방향"을 이야기하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대선 후보직 사퇴·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선언이 이뤄질 것으로 점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