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회사 영업사원인 ‘곰’은 매주 실적을 평가받는 월요일이 두렵다. 입사 후 6개월 동안 단 한 개의 가구도 팔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하나라도 팔아야 하는데, 자기가 생각해도 비싼 가구를 고객에게 선뜻 제안하기가 쉽지 않다.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곰에게 고객들은 하나둘 속내를 털어놓는다. 육아에 지칠 대로 지쳤는데도 나만 멈춰 있다는 조바심과 적막함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쥐. 사사건건 무시하는 남편에게 짓눌려 원하는 식탁 하나 사지 못하는 새.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평생 다 쓰지도 못할 찻잔을 사들이는 멧돼지. 곰은 그들에게 가구를 파는 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맞는지 생각에 잠긴다.
회사는 직원이 생각에 잠기는 걸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 생각은 안 할수록 좋다. 실적만이 최고 가치인 회사는 건강 관리를 해준다는 명목으로 실적이 없는 사원들만 불러서 체중을 재는 모욕과 압박을 가한다. 곰에게는 바지 정장 대신 치마를 입고 굽이 높은 구두를 신으라고 한다. 곰은 순순히 따랐다. 거울 속의 모습이 영 낯설지만, 이게 평범하고 안전한 길이라면 그 길에 올라서고 싶기 때문이다. 어릴 때 품었던 작가의 꿈은 어차피 내려놓은 지 오래. 빨리 돈을 모아서 안정적으로 살려면 남들 하는 대로 해야 할 것 같다.
어색하던 화장도 웃음도 점점 몸에 익자 자연스러워졌다. 실적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던 오렌지 여우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곰은 어느새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고객에게 팔지 않았을 가구를 팔았고, 가식적으로 웃었고, 거짓말을 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실적은 한 번 순풍을 타자 계속 높아져서 드디어 ‘이달의 우수 사원’으로 뽑히는 영예까지 안았다. 높은 곳에 올랐으니 이제 곰은 덜 외롭고 덜 불안할까. 그럴 리가. 곰은 더욱 외롭고 고단해진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정말 여기가 맞는 걸까.’
“어린 시절의 꿈은 까맣게 잊고 어느덧 현실과 타협한 주인공. 팍팍한 일상에 회의감이 밀려올 때쯤 어떤 계기를 통해 각성하게 되고 자기만의 진짜 꿈을 찾아 나선다.” 이런 이야기는 사실 세상에 많다. 정말로 많다. 그래서 식상하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언제나 좋아한다는 뜻이다. 우리 모두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을 해봤거나 지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와 닮은 외롭고 힘든 주인공이 잘되기를 응원한다. 주인공이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곰은 과연 우리의 바람대로 될까. 작품을 꼭 직접 보길 바란다. 한 컷 한 컷 빼어나게 아름다운 이 그래픽 노블은 아시아 어린이 콘텐츠 축제(AFCC) 일러스트레이터 갤러리 선정 작가 이수연의 신작으로,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다. 불안하거나 생각이 많아서 잠이 쉬이 오지 않는 적막한 밤이면 이 책을 꺼내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보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