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쉬는' 청년 늘리는 경직된 사회

입력
2024.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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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15~29세 청년 중 일도 하지 않고, 구직활동이나 취업 준비도 없이 그냥 '쉬었음'이라고 답한 청년이 7월 기준 역대 최대치인 44만3,000명이 되었다. 7월 청년인구 815만 명의 5.4%에 달하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인 2020년 기록도 넘어선 수치다. 작년 11월 정부가 '청년층 노동시장 유입 촉진 방안'을 발표하고 시행했으나 아직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쉬었음 청년' 중 75.6%는 일할 의사도 없다고 답해 쉬었음 청년이 조만간 감소할 가능성도 낮다.

쉬었음 청년의 증가는 청년층의 노동 공급을 줄여 당장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을 낮출 뿐만 아니라 청년들이 노동시장에서 경험을 쌓으며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킬 기회를 없애서 미래 GDP도 감소시킨다. 쉬었음 청년이 취업을 안 한 상태에서 결혼과 출산을 계획할 가능성도 낮기때문에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 감소 속도를 더할 위험이 크다. 그러므로 더 늦기 전에 쉬었음 청년 증가의 원인을 파악하고 적절한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쉬었음 청년이 증가하는 건 우리만은 아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뿐만 아니라 신흥국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히 일본은 1990년대 초반 경제 위기를 겪은 후 쉬었음 청년이 증가하기 시작해 현재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지목되는 원인은 '상흔(scarring)' 효과이다. 청년들이 학교를 졸업할 때 경제 위기가 발생해 취업을 하지 못한 것이 상흔이 되어 오랫동안 일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취업 후에도 낮은 임금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불운하게 졸업과 경제 위기가 겹쳐 취업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받게 되는 불이익도 장기화되면 쉬었음 청년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인 2020년 초부터 쉬었음 청년이 급증한 것은 이 상흔효과와 무관하지 않다.

이에 더해 한국에서는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관련된 상흔효과도 존재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첫 일자리의 임금, 기업규모, 고용 형태가 미래 고용과 임금수준에 장기간 영향을 미친다. 청년들이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으로 경력을 시작한 것이 상흔이 되어 향후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청년들로서는 당장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일자리를 얻기보다는 대기업 또는 정규직 일자리가 생길 때까지 쉬는 것이 평생 벌어들일 소득을 더 높이는 최적의 선택이 된다. 일하기를 원하지만 그냥 쉬고 있는 청년들의 42.9%가 원하는 임금수준이나 근로 조건에 맞는 일자리가 없어서 구직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고 답한 것이 이 때문이다.

최근 기업들이 대졸자 공채보다 능력이 검증된 경력직 위주 채용을 확대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이 상흔효과를 피하고자 하는 쉬었음 청년이 더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정부는 청년층의 눈높이에 맞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낮추는 정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작년 11월 발표한 정부 대책에서 빠진 것이 바로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이직을 원활하게 하는 정책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채용, 임금 결정, 해고에 유연성을 키우는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