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 때문에… 바다거북은 찔리고 찢기며 고통스럽게 죽었다

입력
2024.08.23 14:00
<추적 : 지옥이 된 바다 2부> 
③ 살고 싶어요
제주 바다에 밀려온 붉은바다거북 사체
혓바닥 깊숙이 낚싯바늘 꽂힌 채 발견돼
"부검 10마리 중 3, 4마리가 낚싯바늘에"
폐어구에 얽히고 비닐봉지 먹고 죽기도

편집자주

콧구멍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 피 흘리는 바다거북, 뱃속에 찬 쓰레기 탓에 죽은 향유고래. 먼바다 해양 생물들의 비극은 뉴스를 통해 잘 알려졌죠. 우리 바다와 우리 몸은 안전할까요? 한국일보는 3개월간 쓰레기로 가득 찬 바다를 찾아 다녔습니다. 동해와 서해, 남해와 제주에서 어부와 해녀 63명을 만나 엉망이 된 현장 얘기를 들었고, 우리 바다와 통하는 중국, 일본, 필리핀, 미국 하와이를 현지 취재했습니다. 지옥이 된 바다. 그 가해자와 피해자를 추적했습니다.

찌는 듯한 더위였다. 지난달 16일 제주도 한림읍의 한 연구실. 창문을 죄다 열고 선풍기까지 돌렸지만 썩은 내는 마스크를 뚫고 코를 찔렀다.

“부패가 좀 심한 편이네요."

부검을 시작한 수의사 정원준(29)이 죽은 붉은바다거북의 딱딱한 복갑을 떼어 냈다. 지방층을 걷어내고 장기가 드러날수록 악취는 심해졌다. 숨진 후 적어도 일주일은 지나서야 사람에게 발견된 탓에 이미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다. 부검대 위에 누워 있는 이 거북은 지난해 9월 사람 눈에 들어왔다. 제주 성산읍 앞바다에 사체가 떠밀려왔고, 이후 오랫동안 냉동고에 보관됐다. 그리고 10개월이 지나서야 죽음의 비밀을 밝힐 시간이 왔다.

젊은 바다거북의 몸은 튼튼했다. 서른 살 안팎의 암컷이었다. 사람으로 따지면 이제 막 신체적 성장이 끝난 스무 살 청년이다. 길이 105㎝에 근육량, 지방량 모두 육안으로 봐도 양호했다.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으로 인한 죽음일까. 아니면 비닐봉지나 쓰레기를 먹이로 오해하고 삼켰다가 영양실조에 걸린 걸까. 더위와 악취에도 아랑곳없이 두 시간 넘게 부검은 계속됐다. 죽음의 이유를 밝혀야 다른 거북의 죽음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방어 잡던 낚싯바늘에 걸린 바다거북

부패가 진행된 장기 안에는 특이점이 없었다. 기도는 물론 위장에서도 더 살펴볼 만한 이물질은 나오지 않았다. 뚜렷한 병변도 안 보였다. 장수 동물인 거북을 일찍 저 세상으로 보낸 것은 결국 '그놈' 때문이었다.

“낚싯바늘이 문제가 됐나 봐요. 낚싯줄을 먹은 건 아니라서 다른 사인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띄었지만 결정적 사인으로 단정할 수 없었던 낚싯바늘이 '다잉메시지(살해당한 대상이 마지막 순간에 남기는 힌트)'였던 셈이다. 수의사 박다솔(27)은 동료 정원준의 분석에 고개를 끄덕였다. “낚싯바늘이 혓바닥 안쪽에 깊게 박혀 있었어요. 직접 사인은 아니라도 죽음에 60~70% 영향을 줬을 겁니다.”

낚싯바늘을 꺼내 보니 제법 컸다. 성인 여성의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거북은 혓바닥 밑에 그렇게 큰 바늘이 박힌 채 고통스럽게 먹이를 삼켰을 것이다. 바늘에 연결된 188㎝짜리 낚싯줄까지 매단 채 바닷속을 돌아다녔을 테니, 찔리고 찢기는 고통은 쉽게 멈추지 않았을 거다. 먹는 게 시원치 않으면 면역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에 취약해지면서 급성 패혈증으로 사망했다고 부검팀은 결론 지었다.

부검을 실시한 지 한 달 뒤, 붉은바다거북을 사지로 몰고 간 낚싯바늘의 정체가 정확히 밝혀졌다. 부검팀을 이끈 이성빈(34) 수의사는 기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다금바리같이 바닥에서 사는 바리과 어종이나 부시리, 방어 등을 낚는 저연승어업에서 사용하는 낚싯바늘이었습니다.' 저연승어업은 긴 낚싯줄 중간중간에 바늘을 매달아 바다 바닥까지 줄을 내려서 고기를 낚는 조업 방식이다. “바늘 끝에 매달린 미끼를 먹으려다 사고를 당했을 것”이라고 부검팀은 추정했다. 그 낚싯바늘만 물지 않았다면 70세까지도 살 수 있었던 놈이었다.



낚싯바늘 문 바다거북 "10마리 중 3, 4마리꼴"

멸종위기종인 바다거북과 낚싯바늘의 악연은 질기다. “부검해보면 낚싯바늘을 입에 물고 있는 경우가 바다거북(붉은바다거북 포함) 10마리 중 3, 4마리꼴”이라고 정원준 수의사는 전했다. 죽은 바다거북이 제주 해변으로 떠밀려오는 경우는 지난 3년간 100건에 달한다. 그중 버려진 어망에 얽혀 죽은 수가 15~20%나 된다. 고래와 바다거북 등 해양생물을 연구하는 김병엽 제주대 교수는 "바다거북은 사물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낚싯바늘이나 폐어구로 인한 위협에 가장 취약한 동물"이라고 말했다.

낚싯바늘만 바다거북을 위협하는 건 아니다. 온갖 쓰레기들도 그 장수 동물을 죽음에 몰아넣고 있다. 피해 유형은 크게 ①얽힘과 ②섭취로 나뉜다. 올해 초 언론을 통해 알려진 새끼 푸른바다거북 '대한이'는 두 가지를 모두 겪었다. 제주 서귀포시 앞바다에서 폐그물에 뒤엉켜 발버둥치다 구조됐지만, 삼킨 낚싯줄이 몸을 관통해 장파열로 폐사했다.

잡식성인 바다거북 위장에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견되는 일은 흔하다. 국내 바다거북 협력연구단이 2022년 우리 연안에서 발견된 바다거북 사체 34마리를 부검했는데, 무려 28마리에서 플라스틱이 발견됐다. 그중에는 플라스틱을 38개(3g)나 먹은 거북도 있었다. 플라스틱 섭취(아래 연관 기사 참고)는 바다거북에게 치명적이다. 기도를 막을 수 있고, 작더라도 몸에 축적되면 건강을 악화시킨다. 영양성분이 없는 플라스틱이 위장에 차게 되면 소화 장애를 겪거나 영양실조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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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지표종’ 바다거북 위기=해양 생태계 위기

해양 쓰레기가 죽인 건 바다거북만이 아니다. 전복 같은 패류, 꽃게를 포함한 갑각류부터 향유고래 같은 대형 포유류까지 모든 해양생물을 위협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바다거북의 죽음은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환경지표종(특정 지역의 환경 상태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는 생물종)인 바다거북의 멸종 위기는 해양생태계 전체의 위기 신호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붉은바다거북의 경우 푸른바다거북, 매부리바다거북, 장수바다거북과 함께 우리 정부가 지정한 해양보호생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동·서·남해를 포함해 열대 및 아열대 해양 전체가 그들의 집이지만 개체 수는 감소하고 있다. 산란에 참여하는 암컷은 전 세계적으로 6만 마리 정도로 추산된다.

낚싯바늘을 입에 물고 죽은 바다거북을 보고도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이성빈 수의사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고 했다.

“해양생태계가 무너지면 사람한테까지도 큰 영향을 미쳐요. 당장 우리가 먹을 생선도 잘 안 잡히겠죠. 지구상에 사는 동물의 80%가 육지가 아니라 바다에 산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한국일보 특별취재팀
팀장 : 유대근 기자(엑설런스랩)
취재 : 진달래·원다라·이서현 기자(엑설런스랩), 조영빈(베이징)·허경주(하노이) 특파원, 한채연 인턴기자
사진 : 이한호·최주연·정다빈 기자
영상 : 박고은·김용식·박채원 PD, 제선영 작가, 이란희 인턴PD

※<제보받습니다> 한국일보는 해양 쓰레기 문제를 집중 취재해 보도해 나갈 예정입니다. 해양 쓰레기 예산의 잘못된 사용(예산 유용, 용역 기관 선정 과정의 문제 등)이나 심각한 쓰레기 투기 관행, 정책 결정 과정의 난맥상과 실효성 없는 정책, 그 외에 각종 부조리 등을 직접 경험했거나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면 제보(dynamic@hankookilbo.com)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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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91113430004157)


제주= 진달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