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하사 한 명이 20일 지뢰밭을 뚫고 강원 고성군 육군 제22사단 관할구역으로 걸어와 귀순했다. 북한 현역 군인의 귀순이 공개된 건 2019년 7월 이후 5년 만이다. 지난 8일 북한 주민 한 명이 한강 하구 남북중립수역을 건너 내려온 지 불과 12일 만의 '도보 귀순'이기도 하다. 확성기 방송 등 대북 심리전 효과와 더불어 북한군의 경계 태세가 허술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날 군 관계자는 "새벽 이른 시간 동부 전선에서 북한군 한 명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와 귀순 의사를 표했다"며 "군은 MDL 이북에서부터 감시장비로 (이를) 포착해 정상적인 유도 작전을 실시, 신병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 통일부 등은 이날 귀순 북한군을 인계받아 남하과정과 귀순 여부를 조사 중이다.
의문점은 귀순한 북한군이 어떻게 지뢰를 피해 남으로 내려올 수 있었냐는 점이다. 알려진 동선은 동해선 인근 개활지의 오솔길로 군복을 입은 채 이 길을 걸어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동해선은 2006년 건설된 철로와 2005년 금강산 관광을 위해 개통된 도로가 인접해 있는데, 정보당국은 북한이 지난 4월부터 도로 인근에 지뢰를 매설·가로등 철거, 6월엔 철로의 침목을 제거하는 정황을 포착했다.
이와 동시에 북한은 비무장지대(DMZ) 내 MDL 북쪽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 지뢰 매설·불모지화·방벽 설치 등 전선 차단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4월부터 국경 지대에 매설한 지뢰가 수만 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군은 이를 남한으로의 탈출을 봉쇄하겠다는 의도로 해석한다.
군은 귀순한 북한군이 동부 전선 일대의 지뢰 매설 작업이나 동해선 차단 작업에 투입됐을 가능성을 높게 본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탈북은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상당 기간 계획을 세우고 이뤄진다"며 "귀순한 북한군이 최근 작업에 동원되면서 안전한 경로를 확인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위장 귀순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열악한 환경 탓에 북한군의 국경 경비 태세가 느슨해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은 "평소 최우선 보급이 이뤄지던 전방 지역마저도 보급이 열악해졌다는 얘기가 들린다"며 "북한이 소위 '두 국가론'을 내세운 후 전방 지역 북한군들은 온열 질환과 영양실조, 지뢰 폭발 위험 등 삼중고를 겪으며 살인적인 작업에 동원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북 확성기 효과라는 분석도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탈북 '실행'의 방아쇠를 당겼을 순 있지만 '결심'의 계기로 볼 수는 없다는 평가다.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면 시행한 지난달 21일 이후 한 달 만에 결심부터 실행까지 이뤄지긴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박 교수는 "코로나19로 막혔던 국경이 어느 정도 풀리면서 기존에 탈북을 계획했던 이들의 귀순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또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압록강 인근 수해 지역에 직접 가서 구조 작업을 진두지휘하는 등 잇단 재난에 따른 민심 이반의 방증이라는 분석도 있다. 특히 중산층 자제로 충성심이 높은 이들로 구성된 접경 지역 북한군의 탈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군 관계자는 "북한에선 충성심 높은 중산층 자제들을 전방 지역에 배치한다"며 "이들은 복무를 마치면 노동당 당원권을 얻어 평양에 살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는데, 이를 포기하고 탈북을 결심했다는 건 그만큼 북한 내 젊은 장마당 세대가 동요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