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부인의 권위를 지탱하는 품위

입력
2024.08.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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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3 돌리 매디슨


유럽에서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이던 1812년 미국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이 영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프랑스의 고립을 도모하기 위한 영국의 해상봉쇄와 미국 국적 선박 나포 등 횡포에 시달리던 끝이었고,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지 30년째 되던 해였다.

하지만 미영전쟁(1812~1815)에서 미국은, 막판 앤드루 잭슨의 활약 등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유럽 전황이 소강국면에 접어든 틈을 타 화력을 신대륙에 집중시킨 영국군에 의해 괴멸 직전까지 몰리며 백악관과 의사당 의회도서관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었다.

백악관 함락이 예상되던 1814년 8월 22일 대통령 매디슨은 아내 돌리(Dolley Madison)에게 언제든 피란을 갈 수 있도록 중요 서류와 귀중품을 챙겨두라고 당부한 뒤 전장을 둘러보기 위해 백악관을 떠났다. 다음 날 하인들과 함께 망원경으로 지평선을 살피며 영국군이 언제 들이닥칠지 살피던 돌리는 부부의 귀중품보다 먼저 백악관 벽에 걸려 있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전신 초상화를 챙기게 했다. 다급해하던 참모들에게 “적들에 의해 워싱턴의 얼굴이 모욕당하게 둘 수 없다”고 독려하며 나사못으로 고정된 프레임을 부수고 캔버스 그림만 챙기도록 했다. 그들은 무사히 피신했고, 다음 날 영국군은 백악관 은식기로 만찬을 즐긴 뒤 건물을 불태웠다.

하지만, 돌리가 사전에 알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챙긴 워싱턴의 초상화(Lansdowne portrait)는 건국 초기 대통령들의 초상화를 도맡아 그린 거장 길버트 스튜어트(Gilbert Stuart, 1755~1828)의 원본이 아닌 복제화였다. 스튜어트는 미국 1달러 지폐를 비롯한 19~20세기 수많은 우표에 헤아릴 수 없이 자주 등장한 워싱턴의 미완성 초상화(Athenaeum Portrait)를 그린 화가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