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구한 '대통령의 차'

입력
2024.08.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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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 드골과 시트로엥 DS19



프랑스 전 대통령 샤를 드골(1890~1970)은 평생 최소 30차례 암살 표적이 되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정치인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게, 훗날 프레더릭 포사이드의 소설 ‘자칼의 날’과 동명의 영화로 널리 알려진 1962년 8월 22일의 암살 시도였다.

해 질 무렵 그는 아내 이본과 함께 검은색 시트로엥 DS19를 타고 엘리제궁을 떠나 오를리 공항을 향했다. 시속 70마일 속도로 리베라시옹 대로를 달리던 중 일행은 극우 민족주의 군사조직 ‘OSA’ 조직원 12명으로부터 무차별 총격을 당했다. 우박처럼 쏟아진 140여 발의 총탄에 모터바이크 경호원 2명이 즉사했고, 시트로엥 뒤쪽 유리가 깨지고 네 바퀴가 모두 펑크가 났다. 하지만 드골 부부는 차 바닥에 엎드린 채 운전기사가 모는 차를 타고 무사히 현장을 벗어났다. 운전기사는 “뛰어난 서스펜션 시스템 덕분에 전복되거나 도로를 벗어나지 않고 운전할 수 있었다”고 했다.

‘라 디세(La Deesse(The Goddess))’의 약어 ‘DS’를 단 시트로엥 라인업은 1955년 파리 모터쇼에서 처음 등장한 이래 큰 인기를 누린 모델로, 유압 현가장치를 앞뒤 바퀴에 모두 적용해 차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기능 등을 갖춘 당시로선 획기적인 성능의 차였다. 개성 있는 유선형 차체 디자인으로 ‘달리는 프랑스 예술의 극치’라는 평까지 받던 시트로엥 DS는 저 사건 이후 ‘대통령의 차’라는 또 다른 별명을 얻었다.

드골은 자신을 구한 시트로엥이 1969년 당시 소유주였던 미쉐린 가문에 의해 이탈리아 자동차 업체 피아트사에 매각될 처지에 놓이자 외국 기업의 지분 보유 한도를 15%로 제한함으로써 거래를 저지했고, 75년 파산을 막기 위해 푸조사가 포함된 인수그룹에 공적자금을 지원, 이듬해 PSA 푸조 시트로엥 SA로 거듭나는 데 일조했다. 혹자는 그걸 드골의 보은이라 여긴다고 한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