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국가세력· 항전의지'... 윤 대통령 협치에 다른 메시지

입력
2024.08.2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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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생중계된 을지 국무회의에서 "우리 사회 내부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며 "혼란과 분열을 차단하고 전 국민의 항전 의지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미 연합훈련인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에 맞춰 북한의 비이성적인 도발·위협에 빈틈없는 대응을 주문한 것이다. 취지를 감안하더라도 '검은 선동세력'을 언급한 광복절 경축사에 이어 과거 공안통치를 떠올릴 법한 대통령 발언에 다수 국민이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전쟁이 정규전·비정규전·사이버전을 비롯해 가짜뉴스를 활용한 여론전과 심리전이 혼재돼 나타나는 상황에서 민·관·군의 국가 총력전 태세를 강조하면서 나왔다. 전시 반국가세력을 동원한 북한의 선전·선동으로 국론이 분열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흘 전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반자유세력'과 '반통일세력'이 가짜뉴스로 선동과 편 가르기를 일삼는다고 비판했다.

반국가세력을 특정하진 않았지만, 윤 대통령은 지지층 결집이 필요할 때마다 해당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지난해 자유총연맹 행사에서 문재인 정부 등 야당을 겨냥해 반국가세력이란 표현을 썼고, 4·10 총선을 앞둔 지난 3월 국무회의에서도 언급했다. 최근 '두 쪽 난 광복절'로 비판받은 윤 대통령이 을지연습을 빌려 현 정부의 국정 기조에 비판적인 야당과 언론, 시민단체 등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부가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을 파악하고 있다면, 당장 이들을 체포해 수사하면 될 일이다. 괜한 연기 피우기로 국면전환을 노린다는 의심을 살 게 아니라면 대북·해외 첩보망에 구멍이 뚫린 것부터 손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최근 국군정보사령부에서는 군무원이 블랙요원 명단 등이 포함된 기밀을 중국 동포에게 유출한 데 이어 사령관과 여단장이 맞소송전으로 공작 암호명 등이 공개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사태에 책임이 있는 국방부 장관은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국가안보실장으로 영전했다. 최근 일제 식민지 미화 논란으로 국가정체성을 흔들고 있는 주요 인사들 역시 분명한 역사인식을 밝힐 필요가 있다. 국민은 이러한 난맥상을 걱정하고 있는데, 대통령은 느닷없이 국민에게 항전 의지를 요구하고 있으니 무슨 영문인지 당혹스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