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리아 휴전선 밀고 오는 '그놈 얼굴'

입력
2024.08.17 11:00
14면
말라리아의 주범, '얼룩날개모기' 접사렌즈로 들여다보니
'무쇠 창' 닮은 흡혈관과 오색 빛깔 '모자이크 눈' 돋보여
기후위기 시대에 발맞춰 타 모기종 연구도 시급

편집자주

이야기 결말을 미리 알려주는 행위를 ‘스포일러(스포)’라 합니다. 어쩌면 스포가 될지도 모를 결정적 이미지를 말머리 삼아 먼저 보여드릴까 합니다. 무슨 사연일지 추측하면서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거예요. 한 장의 사진만으로 알 수 없었던 세상의 비하인드가 펼쳐집니다.



'말라리아' 휴전선이 무너지고 있다. 경기 북부, 인천, 강원도 중 DMZ 중심으로 퍼져 있던 국내 말라리아가 올해부터 점점 그 확산세를 넓히고 있다. 지난달 강서구와 양천구에서는 말라리아 환자가 군집으로 발생해 서울 최초로 말라리아 경보가 발령됐다. 2021년부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말라리아가 인구가 밀집된 수도로 번지면서 더 이상 서울도 안전지대가 아니게 됐다. 2㎜ 남짓한 곤충을 매개로 질병이 확산하자 방역 당국은 긴장 중이다.

방역 당국은 말라리아에 대한 공포를 얼룩날개모기의 방역으로 해결하려는 모양새다. 질병관리청이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실시하는 말라리아 매개 모기 감시사업에 올해 6월부터 서울도 참여했다. 말라리아 위험지역 26곳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의 모기를 채집해 '말라리아 매개 모기'와 '기타 모기'로 분류해 계수하는 것이 이 사업의 골자다. 이 외에도 각 지자체는 방충제 및 유문등 사용법을 제시한 얼룩날개모기 방역 가이드라인을 제작해 구청과 주민센터 등에 배포하고 있다. 2명의 확진 군집 사례가 발생한 양천구의 한 도심 공원에는 '말라리아 모기 위험' 관련 현수막이 게시됐고 파란빛을 내는 '해충 유문등'도 간간이 설치됐다.

'스포주의'는 이 공포의 대상이 된 '얼룩날개모기'를 질병청 협조하에 105㎜의 1대 1 배율 마이크로 렌즈로 꼼꼼히 들여다봤다. 12일 충북 청주시 오창읍에서 전날 채집한 모기를 확대해 들여다보니 섬찟하고도 아름다운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아직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여름, 소리 없이 내 팔에 앉을지도 모르는 '작은 흡혈귀'를 예방할 수 있게 얼룩날개모기의 구석구석을 소개한다.


머리카락 직경의 절반에 불과한 '흡혈관', 확대해보니 무쇠 창

모기의 외형을 살펴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시무시한 흡혈관이다. 무쇠로 만든 창을 닮았다. 이 흡혈관이 말라리아 확진자에게 꽂히면 말라리아 원충이 모기의 몸속으로 이동한다. 보통모기아과에 속하는 일반 모기들은 대부분 원충을 위에서 소화하거나 변으로 배출한다. 그러나 학질모기의 위는 원충에 의해 뚫린다. 위벽을 뚫고 나간 원충은 모기의 몸 안에 포자낭을 만들어 그 안에서 증식하다 모기의 혈류를 타고 침샘에 모인다.

이렇게 모인 침샘 속 원충들은 모기가 흡혈할 때 타액과 함께 인간의 몸으로 들어간다. 혈관 확장과 피의 응고를 방지하는 모기의 타액 덕에 흡혈은 원활하다. 결론적으로 머리카락 모발 직경의 절반밖에 안 되는 이 흡혈관을 통해 최종적으로 인간에게 말라리아가 전파되는 것이다.




형형색색의 '모자이크 눈'

육안으로 볼 땐 인지되지 않았던 오색빛깔의 '모자이크 눈'은 사진으로 보니 단연 돋보였다. 구형으로 생긴 커다란 눈은 몇백여 개의 낱눈으로 구성돼 있다. 각 눈은 조금씩 물체를 인지함으로써 전체 시야를 확보하기에 전면뿐만 아니라 후면도 인지할 수 있다. 다만 시력이 나쁘기 때문에 눈 옆에 털이 나 있는 기다란 촉수를 통해 향과 이산화탄소 등을 감지한다.

반면 모기는 인간에 비해 비교적 짧은 가시광선 안에서만 물체를 인식할 수 있다. 유문등과 비슷한 푸른 빛에 끌리는 한편, 빨간색은 검은색과 같은 색으로 인지한다. 주로 포유동물들이 어두운 색이기에 모기는 어두운 색에 끌리도록 진화됐다. 모기에 물리지 않기 위해서는 검은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런 맥락의 경고다.



확진자 관리와 다양한 종 연구 필요

전문가들은 말라리아 대처에 있어서 확진자 관리신규 종에 대한 종합적 연구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다.

말라리아 매개 모기인 얼룩날개모기 개체가 증가할수록 삼일열 말라리아 외 다른 말라리아 원충이 한반도에 유입될 위험은 커진다. 치사율이 10%에 이르는 열대열, 사일열 등이 전파된다면 국민 건강 전체에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동규 고신대 보건환경학부 교수는 "국외에서 열대열 말라리아 감염이 된 후 귀국한 사람의 피를 얼룩날개모기가 흡혈하면 그게 바로 전파의 시작이다"며 "확진자 관리가 우선이다"라고 강조했다.

얼룩날개모기 외에도 다른 종들에 대한 총체적 연구가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후변화는 계속되고 있는데 얼룩날개모기에만 집중하는 것은 근시안적 대처라는 것이다. 최근 연구에서는 열대성 기반 곤충인 모기는 기온이 올라감에 따라 북상할 수 있다고 나타났다. 실제로 2013년에는 제주도에서 베트남에 주로 서식하는 뎅기열 매개 흰줄숲모기가 발견됐다.

김용기 생태정보연구소 소장은 “모기 채집기로 밀도를 파악하고 개체수를 집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은 단순 감시에 가깝다”며 “기후변화로 인한 모기 매개 감염병 위험이 더욱 커지고 있는 가운데 다른 모기 종의 숙주 가능성이나 새로운 종에 대한 연구로 나아가야 기후위기 시대에 다른 질병에 대한 예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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