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시즌이다. 밀린 일을 뒤로한 채, 하지만 약간의 일은 들고 제주도로 갔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예쁜 책방이나 특색 있는 공간을 다니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내가 운영하는 책방 손님 중 제주에서 자란 분이 있었다. 음악하는 예술인인데, 제주의 좋은 공간을 많이 알 것 같아 갈 만한 곳을 소개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흔쾌히 여러 공간을 추천해 주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지인들을 소개해 주고 싶다고도 했다. 동물권과 생태에 관심이 많은 나와 잘 맞을 것 같다고 했다. 새로운 사람 사귀는 것을 아직도 너무나 좋아하는 나는 기쁜 마음으로 소개해 달라고 했다.
이렇게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을, 심지어 중간에 소개해 준 사람도 없이 혼자 만나러 갔다. 유기농 귤 농장을 운영하고, 동시에 농장 옆 작은 공간에서 공연·전시를 기획하는 등 재미난 일을 도모하는 이들이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최근 전시 작품들이 걸려 있었는데, 그들은 내게 그 작품과 작가들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귤 농장과 예술공간 운영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제주에 정착하게 된 이유도 들었다.
도시인이라면 모두 체감하듯, '도파민 폭발'인 도시 생활은 알게 모르게 우리 몸과 마음에 피로를 쌓고, 더 나아가 병들게 만들기도 한다. 그들 역시 도시 생활에 지쳐 이를 청산하고 제주도로 내려온 것이었는데, 자연과 함께하는 삶 속에서 치유됨을 느낀다고 했다. 그들이 안내해 준 어느 언덕에서 새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제주 바다를 내려다보니, 나 역시 '평화롭다'는 기분을 오랜만에 느꼈다.
비록 내가 사는 서울과 거리는 멀지만, 함께할 재미있는 일이 있다면 같이 해보자는 가벼운 언약을 하며 기분 좋게 헤어졌다. 자유롭고 재미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니, 내 안의 꿈들이 꿈틀거렸다. 이미 책방을 꾸리며 나름 '문화예술공간 운영'이라는 꿈을 일부 실현하며 살고 있지만, 책방을 운영하면서 또 하고 싶은 것들은 계속 생겨났다. 그중 하나가 책방 2호점을 내는 것이었는데, 2호점을 낸다면 제주에 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잊고 있던 이 막연한 꿈이 이번에 다시 떠올랐다. 지금의 책방 운영도 겨우 하고 있는 마당에 ‘제주 책방’이라니. 언제 실현할 수 있을지 요원하지만 언젠가 꼭 하겠다고 다짐했다.
변호사로서 책방을 열고 운영한 지 2년 반이 조금 넘었다. 책방 오픈 초기도 그랬지만, 아직까지도 꾸준히 인터뷰 요청을 받는다. 여전히 ‘어떻게 책방을 열게 됐는지’ ‘주변 반응은 어땠는지’ ‘괜찮은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다. 그때마다 이야기한다. 다들 삶에 회의가 한 번씩 오지 않냐고. 그때 나는 오래된 꿈을 떠올려보았고, 결단을 내렸다고.
꿈을 꾸고 결단을 내리면 삶의 회의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꿈을 잊고, 결단을 쉬이 내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각자 삶의 굴곡에서 꿈을 꾸기도, 결단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가 꿈을 잊지 않고, 가끔이라도 꾸준히 떠올려본다면, 언젠가는 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때가 온다고 믿는다. 잠시나마 쉬어가는 휴가 시즌에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 잠자고 있는 우리의 꿈을 떠올려보면 어떨까.